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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2020년

2020년 3월 11일 해지는 안목해변

테라로사에서 커피를 사서 안목해변으로 왔다.

작년에 왔을 때 본 안목해변의 일몰도 좋았기에 이번엔 제대로 찍어보려고 삼각대까지 챙겼다.

태백산맥 너머로 떨어지는 해가 안목항 등대에 걸렸다.

몸이 흔들릴 정도로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겨울바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코로나 바이러스 신드롬.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던데...

방파제에서 긴그림자를 만들며 내려가는 일몰을 담으려했는데, 이상하다....

두 사람의 그림자인데 다리는 3개???

설마 삼각대를 들고 가던 아내가 나에게 발길질을 하다 딱 걸린것은 아니겠지요?

안목항에서 출발하는 울릉도 가는 배가 석양에 물들어 있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삼각대가 넘어지지 않도록 추를 달고 찍었다.

늘 사진을 붙어서 찍는다며  흰소리를 해대는 마님의 말씀에 따라...

이번엔 떨어져서 찍어보려고 했는데,

셀프 타이머를 작동시켜 찍다보니 화각에서 벗어날까봐 몸을 기울인 티가 난다.

나는 자유인이다.

 

존경하는 선배님 한 분이 은퇴를 하면서 죠르바가 되어 보려 한다고 하셨다.

나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리스인 죠르바가 되어 보고 싶다.

니코스 차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이렇게 쓰기 시작한다.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기 직전인데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 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했다.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의 숨결은 김이 되어 유리창에 뽀얗게 서려 있었다. 

밤을 거기에서 보낸 뱃사람 대여섯이 갈색 양피 리퍼 재킷 차림으로 앉아 커피나 샐비어 술을 들며

흐끄무레한 창 저쪽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운 물결에 놀란 물고기들은 아예 바다 깊숙히 몸을 숨기고 수면이 잔잔해질 때를 기다릴 즈음이었다.

카페에 북적거리고 있는 어부들은 폭풍이 자고 물고기들이 미끼를 좇아 수면으로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

서대가, 놀래기, 홍어가 밤의 여로에서 돌아올 시각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하나가 유리창을 코로 누른 채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겨드랑이에다 다소 납작해진 보따리를 하나 끼고 있었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냉소적이면서도 불길 같이 섬뜩한 그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우연하게 마주친 등대 뒤에 숨은 석양.

아니다. 석양의 눈부심 앞에 숨은 등대다.

언제 보아도 설레게 하는 작은 항구의 붉은 등대.

더구나 석양을 받아 부드러운 빛을 던지는 Magic Hour의 이런 모습이 나는 너무 좋다.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황홀함을 느끼게 한다.

해 질녁의 한적한 포구.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포구.

이제는 번잡스런 도시보다는 한적하다 못해 고요함을 주는 시골의 자연풍경이 좋다.

조금은 가리워주고, 조금은 드러내 보여주고...

환한 대낮의 눈부심보다는 부드러운 빛으로 감싸주는

석양의 편안함이 나는 좋다.

 

죠르바가 말하는 <자유로운 것>이란 무엇을 말할까?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거요.>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 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저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요. 럼주 같은 맛이 아니요.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그리스인 죠르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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