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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2020년

2020년 1월 11일 하남시 구산성지

하남시에는 카톨릭 성지가 있다.

미사리 望月洞에 있는 구산성지다.

 

하남시로 이사온지 3년이 되었으나, 이제야 가 보게 되었다.

아담하고 작으마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성당인데, 원위치에서 200여미터를 건물채 들어서 옮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하남시 개발을 하기 위해서였다는데....

만약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도 교회사적 가치가 있는 성지를 지역개발을 한다는 명목으로 옮기자고 할 수 있었을까?

문화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는 미개한 민족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던데....

김 성우(안토니오)聖人의 고향(故鄕)이고 묘소(墓所)가 있는 곳으로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200여 년을 간직하고 있는 평화의 은혜가 가득한 성지 입니다.
평화의 은혜가 가득한 이곳 구산 성지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과 여덟 분의 순교자가 묻히신 거룩한 聖地(성지)입니다.

이곳 뒷산이 거북 형상을 닮았다 하여 거북 구(龜)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구산 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산은 한강변 미사리 조정 경기장 옆에 위치해 있으며, 순교자들의 숨결이 200여 년 동난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구산성지 홈피에서 펌--

본당 마당엔 성 김성우 안토니오 상이 서 있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양반의 자제로 유복한 가정과 존경받는 가문에서 태어난 그가 신앙의 험난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830년경입니다.
경주 김씨 계림군파(鷄林群波) 15대 손인 김영춘의 맏아들로 정조 19년(1795년) 구산에서 태어난 그는

만집(萬集), 문집(文集), 두 동생과 함께 세례를 받고,  친척과 이웃을 입교시켜 구산을 지금의 교우 촌으로 만들었습니다.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은 유방제 신부로부터 보례를 받고, 한동안 유방제 신부를 모시고, 회장직을 수행하며 온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으며,

1836년 모방(Maubant) 나(羅) 신부가 입국하자 자기 집에 모시고 우리말과 조선의 풍습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구산성지 홈피에서 펌.--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이곳 구산에서도 그 여파가 밀려와 그는 공소의 회장으로서 사학(天主學)의 괴수로 지목되어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곤장과 치도곤을 맞으며 배교 하라는 재판관의 강요에 아무런 굽힘없이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따름이오.』라는 말로

오늘날 우리의 심금을 찡하게 울리는 그의 굳은 신앙심을 표현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구산성지 홈피에서 펌.--

거북이 형상을 닮았다는 龜山을 오르면 한강 건너편으로 덕소와 예봉산이 보인다.

 

구산성지 뒷산인 구산을 오르면 호젓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