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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2022년

2022년 4월 29일 신안여행 4. Purple Island

목포에서 서쪽으로 25Km. 암태도, 비금도, 장산도에 둘러쌓인 신안의 1,004개 섬 가운데 하나.

서울에서 찾아가려면 멀고 먼 섬이고, 애써 찾아야 할 특산물도 찾기 어려운 이 섬을 찾아 간 이유는

유엔 세계 관광 기구에서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한 섬이며,

섬의 명칭이 특이하게 Purple Island라는 점 때문이었다.

1,004개의 섬.  곧 '천사 섬'이 있다는 신안.

물론 원주민의 설명에 따르면 정확하게 1,004개의 섬은 아니지만 썰물때 드러나는 섬의 숫자도 포함한 

조금은 의도된  1,004개의 섬이라고 한다.

강원도 첩첩산중 골짜기에서 명승지를 발견하고 놀라듯,

멀고 먼 서해 낙도 끝자락에 위치한 섬에서 발견한 보라색 다리.

 

4세기 로마에서는 황제만이 입을 수 있었고, 최고 권력을 상징하는 색이었던 Purple.

오늘날에도 <자의식이 높고 창의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품위 있는 사람>을 상징한다는 보라색을

 '일 잘하는 그녀의 컬러 스타일 북'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보라색은 빨간색의 힘과 파란색의 우아함을 합쳐 놓은 색으로, 예전부터 고귀한 색이라 불려 왔다. 보라색은 직관력, 통찰력, 상상력, 자존심, 그리고 관용과 긍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우아함과 품위, 화려함을 상징하며 신비스럽고 개성 있는 색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PURPLE - 호화롭고 풍족하며 고가의 분위기는 보라가 연출해 준다 (일 잘하는 그녀의 컬러 스타일북, 2011. 9. 14., 황정선)에서 펌.

퍼플교 입구.

아내가 보라색 상의를 입고 있는 이유는,

퍼플섬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하는데,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은 입장료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닷 바람이 차기에 보온용 여벌 옷을 챙기라고 말하고 싶다.

신안의 섬들과 섬 사이를 채우는 바다는 신비로운 매력을 풍긴다.

반월도에서 박지도로 건너가는 구간.

반월도의 유일한 카페.

섬 주민들이 운영한다던데 섬에 단 한곳 뿐이어서,

추운 날 따끈한 차 한잔이 필요하다면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원어민도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가 여기도 있다니...

I purple you. ???     I seoul U. ???

바닷물이 빠져 나간 광활한 갯벌은 그 크기를 짐작키 어려울 정도.

대한민국의 귀한 자산이요,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지역이다. 

고운 보라색으로 단장한 퍼플교의 모습이 잘 관리되어서

오래도록 다시 찾고 싶은 장소이길 바래본다.

석양이 물들어 가며 더욱 진한 보라색을 만들어 내는 반월도에서 .

기원전 1200년경에 페니키아인들이 시작하였고,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그 생산을 이어받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 이뤄진 1453년까지 계속되었다.[1] 이 색소는 제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했으며, 이걸로 물들인 물건은 부과 권력과 연관이 되었다. 이 시대의 직물 색깔은 고대 사회 내에서 사회적 및 문화적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그 외에도 기술적 성취, 유행 방식, 사회 계층, 농업, 무역 관계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제공한다. 티리언 퍼플은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이르면 기원전 1570년경부터 최초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3][4] 페니키아라는 이름 자체가 '자주색의 땅'을 의미한다고도 한다.[5][6]  염료는 고대에 아주 비쌌는데 이 색상은 쉽게 바라지 않고, 풍화와 햇빛을 받으면 더욱 밝아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색소는 다양한 색조가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비싸게 친 것은 검은색이 옅게 들어간 피색깔이었다.[7][4]

제작하기가 극도로 어려웠기에, 티리언 퍼플은 값비쌌는데 기원전 4세기의 역사가 테오폼포스는 "염료용 자주색이 소아시아 콜로폰에서 그 무게만큼 은으로 팔렸다"라고 기록하였다.[8] 값비싼 비용은 자주색으로 물들인 직물이 지위 상징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걸 사용하는 것은 사치금지법으로 제한되었다. 최고 선임 로마 정무관들은 끝 부분이 티리언 퍼플로 줄무늬가 나있는 하얀색 토가인 '토가 프라이텍스타'를 입었다. 순수하게 티리언 퍼플 색에 금색 줄무늬가 들어간, 좀 더 호화스러운 '토가 픽타'는 로마 개선식에서 축하를 받는 장군들이 입었다.[4]

서기 4세기, 로마의 사치금치법은 더욱 엄격해져서 황제들만이 티리언 퍼플을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4] 이 결과로, '자주색'은 때로는 황제에 대한 환유어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보라색을 걸친다'는 문구는 '황제가 되다'를 의미한다). 티리언 퍼플의 생산은 이어진 비잔티움 제국에서 면밀히 통제했고 황가의 지원금을 받았는데, 황가는 이 색상을 황가의 비단을 물들이는 용도로 제한시켰다.   --<위키백과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