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장마철에 비가 쉬어가는 날. 구름은 있어도 날씨는 맑다. 거제 서남 해안도로를 타고 달려 바람의 언덕에 아내를 데려 간다. 가느 길에 가배항에 들러 섬에 가꾸어농은 정원이 아름답다는 장사도에 가려면 여기서 배를 타야 한다고 알려줬다. 가배항을 지나 어느 이름모를 해안가에 차를 세우고 아침을 먹었다. 베이글과 치즈, 삶은 감자, 삶은 달걀. 바나나, 그리고 후식으로 사과와 드립 커피. 파란하늘과 바다, 산을 감싸는 흰구름을 보며 식사하는 이 기분은 먹어 본 사람은 안다. 지중해 경치 좋은 바닷가 유명한 식당이라 해도 이런 맛을 느낄 수 없으리라. 차창 앞에 펼쳐진 풍경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거제의 해안은 서해처럼 짠맛이 없다. 바닷가라는 냄새가 없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며 식사하는 이 기분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풍경에 취해 식사 후 1시간을 멍하니 앞만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목적지를 찾아 떠난다. 그런데 지난번 혼자 갈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삼거리에서 명사해수욕장으로 우회전해 들어가 본다. 도착해 보니 이런... 이런... 이곳도 거제의 또 다른 명소다. 해수욕장은 작지만 산허리를 타고 오는 도로가 멋진 뷰를 보여주고, 산정상 부위를 감추는 구름이 또한 걸작이다. '처녀의 부끄러움' 융푸라우를 생각나게 한다. 바닷가에는 해상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작품들이 놓여져 있다. 특히 캔버스를 배경으로 앞뒤로 선 젊은 남녀의 작품은 구름 낀 산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면 그 자체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여행은 준비하고 가면 얻는 것이 많다고 하지만, 우연히 가게 된 장소가 주는 놀라움과 아름다움 또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다. 명사해수욕장에서 나와 좌회전, 예전의 삼거리로 향하다, 무언지 마음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따라 차를 급히 돌려 해안쪽으로 달린다. 홍포전망대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가 보자. 무조건 가 보자구...
홍포전망대를 찾아 가는 길인데 도로표지판에서 버스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으니 회차하라는 안내말이 보인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에는 좁은 비포장도로. 이건 뭐지? 거제도 최남단인 것 같은데 비렁길이다. 울렁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천천히 달려 병대도 전망대에 차를 세운다. 전망대에 올라가 보니 병대도와 가왕도 그리고 멀리 매물도까지 보인다. 날씨만 좋으면 사진 찍기 좋은 장소다. 병대도 전망대를 나와 계속 앞으로 달리면 홍포전망대가 나오는 것 같은데 비포장 도로가 점점 험해진다. Off Road를 즐기기엔 아내도 타고 있으니 모험을 하기엔 무모하다. 다시 명사해수욕장 방면으로 돌아가 포장도로를 타고 가야지 하는데, 병대도 전망대로 갈 때 힐끗 보았던, 바위 위에서 홀로 사진을 찍던 분이 궁금해졌다. 그분 차 앞에 나도 차를 세웠다. 카메라를 가지고 올라가 보니 병대도전망대에서 보던 조망과는 각도가 다른데 훨씬 깊이가 있고 원시적으로 느껴진다. 사진을 찍던 분께 '저도 이곳에서 사진 찍어도 되겠습니까?'하고 공손하게 물으니 마침 사진을 다 찍고 철수하시는 길이라며 흔쾌하게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망원렌즈에 삼각대까지 가지고 오신 걸 보니 고수가 분명하다. 나이는 70대 초반정도. 대단하다. 나도 저 나이까지 열정적으로 사진촬영을 할 수 있을까? 검은 구름 사이로 펼쳐진 바위섬들을 여러컷 찍고 날씨 좋을때 다시 와야겠다 생각하고 서둘러 차로 돌아오니 아내가 왜 벌써 오느냐며? 늦을 줄 알고 차 시동도 껐다고 한다. 언제나 카메라를 챙겨 가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아내인데, 예전에는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안한다며 화를 내다가 이제는 포기하고 인터넷 검색하며 나를 기다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이해하려 애쓰는 아내가 고맙다. 함께 사진 찍는 취미를 가지면 좋겠다 생각해 작은 카메라를 주며 같이 찍자고 해도 '됐단다.' 허기사 아내가 서예를 하고 있는데, 나에게 같이 서예를 하자고 할 때, 내가 '됐어요!'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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