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Story

2020년 7월 12일 설거지는 내 마음을 씻는 행위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밥을 먹지 않았다. 빵과 삶은 달걀, 그리고 과자로 대신하고 배고픔을 달랬다. 저녁 4시부터는 밥을 먹자고 생각. 아내가 가져온 오이지를 꺼내 씻고 먹기 좋게 슬라이스 쳐 밀폐용기에 담는다. 오이지와 청양고추 잘게 썰은 조각을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 되기에 청양고추도 2개 꺼내 약간 도톰하게 슬라이스를 쳐서 오이지를 넣은 밀폐용기에 함께 넣는다. 2주 전, 한번에 일을 처리한다며 청양고추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썰어놓았었는데 용기 안에서 고추가 녹아 흐물거리기에 버렸던 기억이 떠올라, 다소 번거롭더라도 오이지 2개, 청양고추 2개 정도씩만 썰어놓기로 했다. 4시에 쌀컵으로 3컵을 씻어 밥솥에 넣고 스위치를 켠다. 냉동실에 넣어둔 매운 어묵도 작은용기에 2끼니 먹을 분량으로 소분해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는 냉동고에 보관한다. 김치도 작은용기에 2-3끼니 먹을만큼만 덜어 놓는다. 김도 먹기 좋을 크기로 잘라 밀폐용기에 넣어둔다. 오늘 비가 와서 차를 마시느라 뜨거운 물을 다 마셔서 재차 주전자에서 물을 끓이고, 물이 끓은 다음 전기스토브를 끄고 남은 열기로 후리이팬에 어묵을 데운다. 1단에서 어묵을 데워도 열이 강해 타버리기 쉬워, 먼저 물을 끓이고 그 다음에 데워진 열기로 음식을 데우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음식이 타지 않아 좋고, 전기스토브의 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밥솥을 열어 밥 상태를 확인한다. 밥냄새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상태인 촉촉한 햇쌀밥이 아주 잘 되었다.  이마트에서 사왔던 쥐포조림과 마늘장아찌, 낙지젓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중앙시장에서 사온 멍게젓도 꺼내고, 김치가 담긴 용기도 꺼낸다. 그리고 방금 잘라놓았던 김도 식탁에 올려놓는다. 마지막으로 오이지와 청양고추, 그리고 후라이팬에 데운 어묵을 접시에 담는다. 반찬이 무려 8가지,  너무 많다. 통영에 내려와서부터 밥을 먹으면 항상 황제식탁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편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블로그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며 천천히 밥을 먹는다. 꿀맛이다. 내가 식사준비를 해서인가? 너무 맛이 있다. 반찬 타령이 있을 수 없다. 반찬이 없다고, 밥맛이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밥맛이 확 나게 하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본인이 직접 밥을 하도록 시키고 반찬을 준비시키면 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은 조소 섞인 질책의 말이 아니라, 맛있게 밥을 먹으려면 몸에서 밥을 먹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식사를 하고 나서 토마토 2개를 먹는다. 입안이 개운하다. 식기들을 물로 행구어 싱크대에 넣고 바로 이를 닦는다. 그리고 앞치마를 하고 고무장갑을 낀 다음 천천히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라고 해 봐야 혼자 먹은 그릇들이니 밥그릇 하나, 접시 하나, 혹은 둘. 나무젓가락 두개와 가위, 도마가 끝. 이전에는 설거지 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여기 내려오기 1달여 전부터 아내가 손목을 다쳐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익숙해졌고, 설거지 후의 깔끔함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식기와 도구들이 싱크대에 가득 들어있어도 하나 하나 씻다 보면 내 마음이 먼저 개운하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비록 밥그릇 한개뿐 일지라도 미뤄두거나 쌓아놓지 않고 바로 씻는다. 나를 배부르게 해주고 기분좋게 해 준 식기들을 씻겨줌으로써 내 마음까지 씻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통영에 내려와 도를 닦고 있고, 작은 깨달음을 하나씩 얻고 있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고행의 길을 가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 가운데서 기쁨을 하나씩 찾아가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행복을 얻게 된다. 큰 깨우침은 아니더라도 소소한 깨달음 속에 숨겨진 기쁨과 행복은 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