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찌뿌둥하다. 그래도 7시에 일어나 오일과 양파즙 마시고 요가매트를 펴고 몸을 풀기 시작한다. 한동작 한동작 진행할수록 머리속에선 거제해수온천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좋을텐데 하는 유혹이 계속된다. 상체풀기를 마무리할 즈음 아래층에서 담배냄새가 올라온다. 창을 닫는데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치민다. '나가서 피우지 실내서 담배를 피우다니 몰상식한 인간…' 일부러 발을 쿵쾅거리며 걷는다. 그런데 3걸음 걷고 내가 피식 웃는다. 못나 보인다. 이런 이런… 내가 나 자신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 참으로 어리석어 보인다. 이게 뭔 큰 일이라고 내가 이리도 흔들리는가? 고깟 담배연기를 이유로 화를 내다니...창문을 닫는데 몸이 춥다. 요가매트를 접어 신발장에 넣는다. 그리고 옷을 벗고 침대위에 눕는다. 유투브에서 비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찾아 듣는다. 나른해지는 몸이 잠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퇴직 후 처음이다. 통영에 내려와서도 처음.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침대시트를 정리하고 잘 때 입는 옷을 벗어 단정하게 개켜 놓으면 밤에 잘 때까지 침대에는 올라가지 않느다는 나름 원칙을 지켜왔다. 그것은 퇴직하고 나서 게을러질 수 있는 나 자신을 계면하기 위한 스스로의 단속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원칙을 깼다. 밤새 계속된 장마비로 기온이 내려가 체온이 떨어지니 몸에서 쉬자는 반응이 강하게 왔지만, 트리거는 아래층에서 올라온 담배냄새. 해서 11시까지 침대에서 음악을 들으며 시체놀이를 했다. 그 덕에 임영웅이 부르는 음악모음을 들었는데. 트로트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노래도 매력적으로 부른 임영웅이 1등을 한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임영웅의 노래를 16곡 듣고 일어난다.
오래누워 시체놀이 하는 것도 허리가 아파서 포기. 일어나 물부터 끓여 달걀부터 삶는다. 커피 내릴 준비를 하고 치즈를 꺼내 3조각 썬다. 오늘 아침식사도 베이글과 치즈, 소시지, 삶은 달걀, 청양고추와 오이지 그리고 커피. 달걀이 삶아지고 나면 그 열기를 이용해 소시지를 익힌다. 기름기가 있는 소시지는 청양고추 슬라이스 1조각과 오이지 1조각을 올려서 함께 먹으면 아주 맛나다. 핫소스를 뿌리지 않아도 된다. 소금만이 아니라 매운 맛도 음식의 맛을 배가시킨다는 위대한 발견(?)을 했다. 스피커에선 모자르트의 레퀴엠이 흐른다. 나는 가끔 레퀴엠을 듣는다. 특히 기분이 우울할 때나 비가 오는 날에는 항상 듣는다. 장송곡 혹은 진혼곡으로 알려진 레퀴엠을 들으면 2악장 Kyrie부터는 들끓는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하고, 5악장 Sanctus와 6악장 Benedictus를 지나 7악장 Agnus dei 까지 들으면 어디선지 모를 곳으로부터 힘이 솟는다. 그래서 나는 우울할 때 레퀴엠을 듣는다. 비오는 날 정오 무렵, 레퀴엠을 들으며 혼자 먹는 아메리칸 브런치는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에너지 섭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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