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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베네수엘라 카리브해 연안 산타마리아 주 아라카타카에서 출생 1967년 출간, 1982년 노벨상 수상.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연안에 있는 아라카타카란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마르케스는 12남매 중 장남이었으며, 태어난 후 8년 간을 외조모부의 집에서 살았다. 1946년에 마르케스는 보고타 근처의 시파키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콜롬비아 국립대학에서 잠깐 동안 법학을 공부했다. 그 후 1950~1965년까지 콜롬비아, 프랑스, 베네수엘라,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언론인으로 일했다. 보고타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기자로 유럽에 체재하였다. 그 후 멕시코에서 창작활동을 하였고, 쿠바혁명이 성공한 후, 쿠바로 가서 국영 통신사의 로마 · 파리 · 카라카스 · 아바나 · 뉴욕 특파원을 지내면서 작품을 썼다. 1955년, 카리브해에서 10일 간 표류한 콜롬비아인 선원의 고통스런 체험에 대해 기사를 쓰며 그가 콜롬비아 해군을 비판했기 때문에 신문사는 문을 닫게 되었고, 그는 파리에서의 외국 통신원직을 그만두어야 했다. 쿠바 혁명이 끝난 후 그는 쿠바 통신사인 '프렌사라티나'에 들어가 보고타, 뉴욕, 멕시코시티에서 일하는 한편, 광고 회사에도 다니고 영화 대본도 썼다.

  마르케스가 결정적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서였다고 한다. 그 소설을 읽고 마르케스는 이런 일들도 현실 속에서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데, 그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라면 자신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작가 수업을 시작한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며 또한 그를 콜롬비아의 세르반테스(Cervantes)라고 일컫게 한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Macondo)라는 가공의 땅을 무대로 하여 부엔디아 일족의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폭력으로 점철된 20세기 전반기의 콜롬비아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살아온 마르케스는 금세기 최대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작품에서 중남미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에 대한 풍자를 신화적인 수법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현대의 중남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혈육들의 모습을 이 작품의 등장인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백년의 고독』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모든 것이 결집되어 그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은 신화적 요소를 도입하여, 우르술란과 호세 아르까디오의 마꼰도라는 도시의 건설을 그리고 있다. 이 둘은 서로 사촌간으로 둘 사이의 근친 상간으로 인해 돼지꼬리가 달린 자식이 태어날것 이라는 예언에 따라, 아무도 닿지 않는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초기의 외부와의 접촉은, 멜키아데스를 중심으로 한 집시들의 방문이었고, 이들은 신기한 외부 문물을 마을 주민들에게 소개하게 된다. 이 신기한 외부 문물은 호세 아르까디오에게 외부 세계의 과학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자극하는 기제가 된다. 마꼰도의 고립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시장의 등장, 내전, 철도의 건설, 외국인 바나나 공장의 건설 등의 사건을 통해 외부 세계와 접촉하게 된다.  

  그러나 파업에 참가한 공장 노동자들이 대량학살로 사망하고, 폭풍우와 가뭄이 농장을 파괴함에 따라 외국인 바나나 공장이 철수하고 다시 마꼰도는 고독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은 진보와 신식민지라는 중남미의 상황에 대한 반영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단순하게 마꼰도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서보다 깊은 차원에서의 비극을 나타낸다. 즉 이야기의 끝에서 부엔디아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 멜키아데스가 남기고 간 원고를 해석하고, 이것이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원고를 읽는 동안만 이 이야기가 지속되리라는 것을 발견하는 데 텍스트가 갖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 반복할 수 없는 고독한 행위이며 죽음의 행위가 된다. 결말은 비극으로 끝나고 삶 자체는 반복될 수 없으며 한번 지나간 시간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삶의 진정한 불안은 바로 반복할수 없다는 그 사실에서 기인하고 이 공포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유머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품에서 죽음은 항상 마술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 이해된다.

* 첫머리 - "긴 세월이 흘러, 총살 집행대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오래 전 어느 오후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얼음 구경 갔던 일을 떠 올렸다. 그때의 마콘도 마을에는 선사시대 공룡알처럼 거대하고 하얗고 매끈매끈한 돌이 깔린, 맑은 물 흐르는 강가에 진흙과 갈대로 지은 집 스무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마무리 - "마콘도는 이미 성서에서 나오는 미친듯이 노한 폭풍에 휩쓸려 흙먼지와 쓰레기가 회오리를 일으키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중략~~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양피지 해독을 끝내는 바로 그 순간 이 거울의 마을, 아니 신기루의 마을은 바람에 날려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또한 백년의 고독이 운명 지어진 가문은 두번 다시 지상에 나타 날 기회가 없으므로, 과거와 미래를 불문하고 양피지에 기록 된 모든 일들은 되풀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노년기를 평온하게 보내는 비결이란 고독과 명예조약을 체결하는 길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노령과 환멸때문에 지금은 얌전한 동물처럼 지내고 있지만, 나이 든 대령이 한번 늙은이의 완고함을 발휘하는 날이면 이 집을 토대부터 뒤집어 엎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사람은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있을 때에 죽는다.  

* 집안 식구들이 모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길만 거듭해서 돌아 다니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그들이 날마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벗어 날때만 무엇인가 잃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 그때가 되어서야 우르슬라는 자기의 우둔함이 노쇠함이나 어둠이 거둔 첫 승리가 아니라, 시간이 내려준 형벌임을 깨달았다.

* 죽기 전의 화해란 평생의 우정보다 훨씬 값진 것이란다.  

* 그러나 이윽고 페르난다도 메메의 이유 있는 듯한 침묵과 갑작스런 신경질과 주체 할 수 없이 바뀌는 기분과 앞뒤 안 맞는 말들을 눈치채게 되었다. 페르난다는 메메가 벌써부터 거짓말을 해 가면서 딴짓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지만, 딸의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은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대령이 거짓말쟁이나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대령이 전쟁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왜 그토록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어야만 했는지 그 까닭을 알수가 없었다. '공포'라는 단어 하나면 충분했을텐데 말이다.  

* 나이를 먹어 쇠약해져 감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슬픔에 젖어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독속에서 인간미를 띄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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