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무섭다. 그냥 무섭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거대한 파워와 에너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치졸한 생각인지 모르나 포효하는 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보고 싶었다. 지난 5호 태풍 바비가 올 때는 하루 전부터 거제대교 앞에서 태풍이 오길 기다렸었다. 거제도를 스쳐 지나간 태풍 바비는 나뭇잎을 조금 흔드는 정도였다. 그런데 10호 태풍 하이선은 달랐다. 어제 저녁 9시부터 유리창을 때리는 비의 강도가 지금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세기였다. 에어컨 실외기가 놓인 대피실의 환기창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와 사방으로 마구 몰아치는 빗물 때문에 간밤에 잠을 자지 못 할 정도였다.
11시 30분, 새벽 2시, 4시... 창이 깨질듯한 바람소리,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기괴한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었다. 혹시나 환기창이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대피실에 가보니 잠가 놓았던 환기창이 바람에 밀려 열렸고, 여기를 통해 비가 쏟아져 바닥이 흥건했다. 얼른 대피실에 보관하던 물건들을 옮기고 환기창을 단단히 닫았다. 창문에 설치된 방충망이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방충망이 부서져 낙하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는데, 새벽 4시에 보니 우측으로 밀어 놓았던 방충망이 없어졌다. 유리창엔 계속 세찬 비바람이 때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계속되는 태풍의 소리를 들으며 자다깨다를 반복. 6시 30분에 일어나 대피실 환기창을 다시 닫고, 유리창 방충망을 살피니 우측에 있던 방충망이 바람에 밀려 좌측으로 가 있다. 평소 방충망의 위치를 바꿀때 조금 힘을 주어 밀어야 이동이 가능했는데, 태풍이 방충망의 위치도 바꾼 것이다.
비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는 정상 작동한다. 1층에 내려와 보니 바람이 매우 거세다. 바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뭇가지가 꺽일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분다. 마침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다. '거기 어때? 괜찮아?' '괜찮은 것 같아, 궁금해서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바람은 거세지만 피해는 없는 것 같아. 만조때여서 그런지 포구에 떠 있던 배들이 제방 높이만큼 올라와 있어. 포구 앞에 있는 집들 까지는 물이 차지 않은 것 같아.' '알았어. 그래도 위험하니 얼른 다시 올라가' 아내와 통화를 마치고 도로를 보니 차들이 다니기는 하지만, 거제대교를 넘어 거제도까지 가던 버스들이 아파트 앞 휴게소 주차장에서 유턴한다.
거제대교를 건너려면 바다에서 부는 횡풍을 버스가 감당하기 어려워 내린 결정인것 같은데, 옳바른 결정이라고 본다. 2020년 제10호 태풍 하이선. 태풍의 위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태풍은 도전해 볼 대상이 아니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태풍은 피하는 것이 일책, 피하지 못했으면 안전한 장소를 찾아 대피하는 것이 이책. 감히 태풍에 맞서 보려 하거나, 태풍의 위력을 보고 싶다는 객기를 부려서는 안된다. 8시에 부산을 지난다는 태풍이 9시부터 비바람이 멈추더니 지금 시각 10시 14분인데 파란하늘이 나왔다. 피해 없이 태풍이 지나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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