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통영자동차정비소에 차를 입고시켰다. 지난 금요일 대전에서 접촉사고를 당한 보험처리를 상대측에서 100% 과실을 인정하고 수리비 전액을 부담해 주기로 했고, 통영에서 수리할 업체를 보험사에서 추천을 받아 오늘 수리를 맡겼다. 8시 50분에 차를 입고시키고, 정비업체측에서 다이소 앞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먼저 서호시장으로 갔다. 그간 3번이나 갔다 문이 닫혀 있던 훈이네시락국에서 아침을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천천히 걸으며 통영터널을 가 보려 한다. 훈이네에 가 보니 불이 켜 있다.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간 3번이나 허탕을 쳤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허리를 다쳐 2달간 문을 닫았었단다. 맛나게 시락국을 먹고 해저터널 방향으로 걷는다.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새 해저터널 입구까지 왔다. 지난번 아내와 왔을때는 식사를 하러 왔다가 우연하게 해저터널을 다녀와서, 급한 마음에 핸펀으로 찍은 사진 밖에 없었기에 오늘은 카메라를 챙겨왔다. 도천동에서 바다 건너 미수동으로 해저터널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 미수동에서 해저터널을 나와 터널의 수면 위 지점을 찾아본다. 버스 4대 길이의 아주 좁은 지역이다. '판데목'이라는 명칭이 아직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에게 쫓기던 왜군들이 부산 방면으로 도망가다 이 곳에서 막혔단다. 이 지점은 옛날부터 썰물때는 바닥이 드러나 사람들이 걸어서 미륵섬으로 건너갔고, 밀물이 되면 작은 배들이 해협처럼 지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침 썰물 때 막힌 왜군들이 배가 지날 수 있게 좁은 해협을 '팠다'고 하여 '판데목'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그후 영조 33년인 1757년에 '굴량교'라는 나무다리를 가설했고, 1915년에 착량교라는 돌다리를 놓아 아래로는 배가 지나고 사람들은 밀물에 관계없이 미륵도를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1927년에 이곳에 해저터널을 건설했고, 1967년이 되어서 해저터널 위로 충무교 또는 운하교라는 다리를 건설했다. 1998년에는 충무교에서 서쪽으로 당동에서 미수동으로 왕복 4차선 통영대교를 건설했다.
충무교에서 통영대교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좁은 수로를 오가는 화물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아내가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느냐며 놀란다. 충무교를 지나 도천동 음악마을을 한바퀴 돌아본다. 60-70년대의 오래된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제주도에 있음직한 돌담도 보인다. 도천 음악마을을 빙 둘러 내려오니 바로 해저터널 앞이다. 여기부터는 해안가를 따라 걷는다. 포구에 정박해 놓은 배들에서 분주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특이한 점은 모두가 나이 먹은 노인들이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배를 몰고 나간다. 할아버지는 닻을 거둬 올리고, 할머니는 능숙하게 배 키를 잡고 몰고 나간다. 어촌에는 나이먹은 사람들 일지라도 일이 있어 다행이다. 도시에선 중늙은이들이 할 일이 없어 문제인데, 농촌이나 어촌으로 내려가면 어떨까?
포구를 지나 여객선터미널로 들어간다. 볼 일을 보고 잠시 고민을 한다. 서호시장에서 어묵을 살까?말까? 지금 냉동실에 베이글로 가득이라 더 넣을 자리도 없는데... 다음에 사자! 다리가 뻐근해 온다. 버스를 타고 아파트로 가려고 버스정류장을 살핀다. 지난번에는 100번 버스가 정차하는 버스정류장을 찾지 못해 한참을 걸어가야 했었다. 이번에 반대방향으로 걸어가 본다. 그런데 왠걸 꽤나 걸었는데 정류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00번버스가 서호시장 뒷길로 들어가는 걸 발견하고 쫓아간다. 새로운 도시에 간 여행객은 발품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서호시장으로 올때는 버스정류장이 북쪽 한블럭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거제대교 방향으로 갈 때는 서호시장 바로 앞에 정류장이 있었다. 바로 앞에서 놓쳐 버린 100번 버스를 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보다는 10미터 떨어진 어묵가게에 가서 매운어묵 3천원어치를 사들고 나온다. 어묵을 조리해 내던 할아버지가 '우리집 어묵은 싱싱한 생선만 사용해서 맛이 좋아요'라며 은근 자랑을 하고, 어묵을 봉지에 넣던 할머니는 '우리는 양도 많이 줘요'라며 맞장구를 친다. 아마도 건너편 어묵가게를 의식한 말이지 않을까 싶다. 건너편 어묵가게에서는 천원에 3개인데, 여기는 천원에 6개. 배나 준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도 아니니 나는 건너편 젊은 아줌마가 하는 가게로 갈 이유가 없다. 나도 시니어 줄에 서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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