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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릴케, 말테의 수기

* Rainer Maria Rilke - 1910년 35세때 '말테의 수기' 간행.  1926년 51세때  뮈조트성에서 10월경, 그를 찾아온 이집트의 여자 친구를 위하여  정원에서 장미를 꺽다가 손가락에 가시가 찔려  화농으로 패혈증 증세. 12월 29일 사망.

* 머리말 - 툴리에 거리, 9월 11일   그래, 그랬었던가. 이곳에 사람들이 오는 것은 살기 위해서였던가. 나는 오히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죽어간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나는 밖을 걸어 다녔다. 나는 보았다.--- 여러 개의 병원을. 나는 어떠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그의 둘레를 에워싸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또 임신한 여자를 보았다. 햇볕을 받아 따뜻해진 높은 담을 따라 무거운 몸을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이따금 손을 뻗어 담을 더듬었다. 아직도 담이 그곳에 있는가 하고 확인하듯이. 분명 담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그 안은? 나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 산원(産院). 하긴, 몸을 가볍게 해주긴 하겠지.--- 그것을 위한 장소니까. 그 앞은 생자크거리, 둥근 지붕의 큰 건물이 있다. 지도에  발르 드 글라스 육군병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을 알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좋다. 뒷골목으로 들어서니 주위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냄새를 식별해 낼 수 있는 한도내에서 말한다면 요오드포름 냄새가, 감자 튀기는 기름냄새가, 그리고 불안을 풍기고 있었다.

-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나 자신도 어떻게 된 셈인지 알 수 없으나, 모든 것이 전과는 달리 깊숙이 내 속으로 들어와 여느 때 같으면 막다른 곳에 이르러 막히게 될 곳에서 막히지 않는다. 나에게는 나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내부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지금 그곳을 향해 들어온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 이젠 편지를 쓰지 않겠다. 내가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무엇 때문에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변해가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지난 날의 내가 아닐 것이다. 이전과 다른 내가 되어 있다면 나에게 한 사람의 지기(知己)도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수는 없다.  

-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얼굴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많은 얼굴이 있다. 누구나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이고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 얼굴은 여행하는 동안 끼고 다니던 장갑처럼  낡고 더러워지고 쭈글쭈글해져 있다. 그들은 얌전하고 단순한 사람들이다. 얼굴을 바꾸려 하지 않고, 더러움을 씻어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좋아, 하고 그들은 주장 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고 누가 말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러한 의문이 당연히 남는다. 그들도 그 밖에 몇 개인가의 얼굴을 갖고 있을텐데,  그 밖의 얼굴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간직해 두는 것이다.  

- 그러나 한편 무서울 만큼 재빠르게 얼굴을 바꾸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처음에는 얼마든지 바꾸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겠지만, 그럭저럭하다가 마흔 살이 될까말까 할 때 벌써 마지막 얼굴이 되고 만다. 물론 여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비극이 있다. 그들에게는 얼굴을 소중히 하는 습관이 없다. 마지막 얼굴도 한 주일만에 닳아버린다. 구멍이 뚫어지고 여기저기 종잇장처럼 얄팍해져서 어느덧 차츰 안이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이미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들은 그것을 단 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 다 죽어가는 사람이란 고집이 센 법이다.  

- 마치 과실이 핵을 갖듯이, 사람은 자신속에 죽음을 갖는 것이라고. 아이들은 조그만 죽음을, 어른들은 커다란 죽음을 갖고 있었다.  여자들은 뱃속에, 남자들은 가슴속에 자기의 죽음이라는 것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을 갖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그들에게 독특한 위엄과 조용한 긍지를 주고 있었다.

- 울스고르의 시종 크리스토프 데틀레우 브리게의 죽음이었다. 그는 암청색 시종복에서 거의 빠져 나와 바닥 한 복판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 오늘은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나는 튈르리공원을 빠져 나왔다. 태양을 등진 동쪽은 모든 것이 눈부시게 빛을 가로막고 있었다. 빛을 받고 있는 쪽은 안개가 자욱이 끼어, 마치 밝은 잿빛 커튼에 싸여 있는 것 같았다.  

- 보는 것을 배우고 있는 이상, 나는 이제야말로 무엇인가 일을 착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28세, 지금까지 일다운 일을 하나도 해보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카르파치오에 대해 논문을 하나 썼는데, 그것은 매우 엉성했다.

- 시란 젊을 때 쓰면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려면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일생동안, 그것도 되도록 긴 일생을 두고 의미(意味)와 감미(甘美)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먄 비로소 훌륭한 열 줄의 시를 쓸 수 있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감정이 아니며---시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 시 한 줄을 쓰기 위해 사람은 많은 도시를 보지 않으면 안된다. 짐승들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새들이 나는 방법을 느끼고, 조그만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낯선 고장의 길을, 뜻하지 않은 해후를, 서서히 다가오는 별리(別離)를 생각해 낼 수 없어서는 안된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어린시절의 나날을,  기쁘게 해 주려고 했건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부모에게 상처를 입혔던 것을(다른 아이 같았으면 기뻐했을텐데…),  그토록 기묘하게 시작되어 그토록이나 많은 깊고 무거운 변화를 가진 어릴 때의 병을,  조용하고 잠잠한 이 방 저 방에서 지낸 나날의 일을, 해변의 아침을, 바다 그 자체를, 그 바다 이 바다를, 하늘 높이 웅성대며 온 하늘의 별들과 함께 날아간 나그네 길의 밤들을 생각해 내지 못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을 상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아직 불충분하다.

- 사람은 수많은 사랑의 밤들의, 하룻밤 하룻밤이 각각 달랐던 사랑의 밤들의 추억을, 진통의 괴로움에 헐떡이는 여인들의 외침소리나, 육체가 닫히기를 기다리며 잠드는 가뿐하고 하얀 産後의 여인들의 추억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또 임종하는 사람들의 머리맡에 앉아 본 일도 없어서는 안되며,  활짝 열린 창문이 덜컹거리는 방에 죽은 사람과 함께 앉아 있었던 일도 없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추억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추억이 많아지면 그것을 잊어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들이 망각의 저편에서 다시금 되살아나는 때를 기다리는 깊은 인내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추억 그 자체는 그대로 존재 할 가치가 없는 것이니까. 추억이 우리들의 내부에서 피가 되고 눈길이 되고 몸짓이 되어 이름이 없는 것, 이미 우리들 자신과 구별되지 않는 것이 되는 그때에야 비로소  어떤 지극히 드문 시간에 시 한 줄의 첫 단어가  그러한 추억들의 중심에서 일어나, 추억속에서 걸어나오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 조그만 방에 앉아 있다. 나브리게, 28세된 이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여기에 앉아 있다. 나는 전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5층에 위치한 방에서 잿빛으로 흐려지는 파리의 어느 오후에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 "잊어서는 안된다.  말테, 무엇인가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한다. 희망을 갖는 걸 포기해서는 안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일생동안 계속되는 희망이란 있는 법이란다.  그렇게 되면 이루어지건 말건 그건 아무래도 좋은 거야." (말테의 어머니가 말테에게)

- "인생에는 1학년이 갈 수 있는 반이 없구나. 언제나 갑자기 너무 어려운 걸 배우게 되거든."  

- 눈에 뛸 뿐이라면 전혀 불쾌하지도 해롭지도 않다. 마음에 두지 않고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연한 기회에 귀에 들어오면 착각속에서 날뛰기 시작하여 마치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처럼 기어나오는 그러한 일이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자칫하면 뇌수에 까지 침입하여 마치 개의 코 끝으로 스며드는 폐렴균처럼 그 기관을 좀 먹으면서 번식하는 그런 일조차 있는 것이다. 이것은 즉 이웃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 세월을 잔돈으로 바꾸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1년 단위로 한다면 얼마나 시간 여유가 많겠는가.  그런데 잔돈이 되고 보면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린다. "지폐로 해서 돌려주시오. 10년짜리 지폐도 좋으니까."하고 말하리라. 10년짜리 지폐 넉장과 5년짜리 지폐 한 장, 나머지는 그 녀석에게 주어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