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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 37세인 1939년 4월 출간,  샌프란시스코 남쪽 캘리포니아 서부 소도시 샐리너스 출생.

* 머리말 - 제1장.   오클라호마의 넓은 황토 벌판과 군데군데 거무스름한 잿빛 평원 위에 마지막 빗줄기가 지나갔다. 그러나 지난 장마가 할퀸 상처를 더 깊이 파 헤치지는 않았다. 도랑을 이루며 흘러간 자국 위를 쟁기와 보습이 가로지르며 몇번이고 파고 지나갔다. 비는 옥수수 잎을 부쩍 키워 주었고, 도로 양쪽에 잡초마저 우거지게 해, 검붉은 황토 벌판은 다시 초록색 이불 속에 가리워지고 있었다. 5월도 저물어가자 하늘빛은 차츰 색이 엷어지더니 봄철에는 높이 걸려 있던 구름도 사라져 갔다. 무성하게 뻗어 오르는 옥수수 밭에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면 칼날처럼 뻗어오르는 옥수수 잎사귀 가장자리마다 갈색 무늬가 줄지어 퍼져 갔다.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잡초들도 점점 검붉은 색을 띠어갔으나 그다지 극성스러운 변화는 아니었다. 땅거죽에는 엷고 딱딱한 껍데기가 입혀졌고  하늘 빛이 엷어지면서 대지도 색을 잃어갔다. 빨간 황토는 보랏빛을 띠어갔고  잿빛이었던 땅은 희끄무레해졌다.

-   뭐든지 다 얘기 합시다. 내 이름은 조우드요. 톰 조우드. 아버지는 시니어 톰 조우드구요.

- "아까도 말 했지만 트럭 모는 놈치고 희한한 짓 안하는 놈 없더라구. 또 그렇게 놀지 않을 수도 없지만 말이야. 이렇게 운전대에만 얌전하게 앉아 타이어 밑에 깔리는 길바닥만 쳐다보고 있다가는 돌아버릴거야.  어떤 친구가 한번은 그러더군. 트럭 운전사들은 노상 먹는 타령이라구. 언제나 길바닥의 햄버거 집에만 매달려 있다고 말야."

- "아마 그건 죄악이라는 것은 아닐거야. 모르긴 모르지만 인간이란 아마 그런 존재일거란 말이야. 어쩌면 우리는 아무 의미도 모르면서 지옥이라고하는 관념적인 것을  우리로부터 추방해야 한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일거야."

- 제기랄, 죄악은 무슨 놈의 죄악이 있단 말이야! 무슨 놈의 선이 있고!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그대로가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이 다 같은 얘기야. 사람들이 하는 일 가운데에 괜찮은 일도 있고, 언찮은 일도 있는 정도겠지. 허나 그것도 다 말하기 나름이야.'

- 입으로 말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일부러 연필까지 들고 끄적거릴 필요는 없는 것.'  

- 소작인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로구나. 누구든지 재산이 조금 있으면 그 재산이 바로 그 인간이 된다. 그것은 바로 그 인간의 일부요, 그 인간과 같은 것이 된다. 사람이 재산을 가져야만 그 재산을 디디고 걸어다니고 행세하고 그걸 조정하고 일이 잘 안되면 속을 썩이고 잘 되면 기뻐하고 하니 그 재산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사람은 재산이 있음으로해서 실제 이상으로 더 훌륭해 보이기도 한다. 비록 일에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재산이 있으면 위대한 것이다. 정말 그렇다.'

-   소작인은 계속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땅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손가락으로 흙 한번 만져 볼 시간도 없는 그런 사람에게 땅을 가지게 한들 그가 그 땅 위를 걸어다닐 리도 없을텐데, 어떻게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 된단 말인가. 그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은 생각도 마음대로 하지 못할 텐데 그 재산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해도 재산이 오히려 사람보다 힘이 더 센 것이다. 사람은 조그마할 뿐 그렇게 클 수가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만이 큰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오히려 자기 재산에 대한 노예가 아니겠는가. 그도 그럴법한 일이군.'  

- "난 늑대만큼이나 거칠었어. 하지만 이제는 족제비로 승격했다네.  자네가 사냥꾼의 입장이 될 때면 자네는 강한거야. 아무도 손대지 못하거든. 하지만 사냥을 당해야 할 때는 얘기가 달라지는거야. 무언가 변화가 오지. 즉 약해지는 거야. 사나운 성질은 남았을지 몰라도 역시 약해질 수 밖에 없어. 내가 사냥감으로 쫓기고 있는지도 꽤 오래 됐어. 나는 이제 사냥꾼이 아니라네. 어둠 속에서 한 몸쯤 쏘아 죽일 수 있을진 몰라도 울타리 말뚝을 뽑아들고 사람 대가리를 후려 치지는 못하게 되었어. 내 자신에게나 자네에게나 쓸데 없는 짓을 해 보일 필요가 없는 거야. 바로 그런거야."

-   도회지마다 도시 변두리마다, 그리고 들판에도 공터에도 중고 차량 시장에도 폐차장에도 주차장에도 과대 선전에 열을 올리는 간판들이 즐비했다. - 중고차, 신품과 같음, 특가 판매, 트레일러 3대 포함, 27년형 포드 깨끗함, 검사필 차량 보증함. 라디오 무료 증정, 휘발유 백 갈론 무료 서비스, 관람 자유, 중고차 수리비 일체 불필요.  

- 손님들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도록 하라. 그들이 너의 시간을 소비하도록 하면 된다. 우리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느끼게 해야 한다. 이런 데에 오는 사람들은 대개가 괜찮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한테 폐 끼치기를 싫어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폐를 끼치게 해놓고 그 자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 어머니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할 의사가 있느냐는 문제예요." "할 수 있는 일만 하려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캘리포니아고 어디고 아무데도 못 갈거예요. 하지만 할 의사만 있으면  우리는 무엇이나 하는데까지는 해볼 수 있어요."

-   국도 66호선은 이주민을 위한 주요 간선도로이다. 66호선.  지방을 횡단하는 길다란 콘크리트 길. 지도 상에는 위 아래로 완만하게 구부러져서 미시시피 강으로부터 베이커즈 필드 시(캘리포니아 주 중부 도시)에 까지 뻗어 있다. 황토 벌판과 회색벌판을 넘어 산맥 위를 구불구불 기어 올라 대분수령 록키산맥을 횡단하고 태양열을 받아 무섭게 번뜩이는 사막 속으로 내닫다가 사막을 가로질러 다시 산쪽으로 기어오르고, 산에서 내려와서는 기름진 캘리포니아 골짜기 속으로 접어든다.  

- 66호선은 도주하는 사람들의 길이다. 토사와 말라붙은 땅으로부터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의 길이다. 트렉터의 굉음과 서서히 죄어오는 소유권으로부터, 북쪽으로 뻗어오는 사막의 침입과 텍사스로부터 밀려오는 회오리바람으로부터 그리고 그 메마른 땅에 그나마 남아있는 기름기마저 훑어가는 홍수로부터,  이 모든 재앙으로부터 피난을 떠나 온 사람들의 길인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은 66호선을 찾아  작은 샛길을 헤치고 또는 마차 길이나 시골길을 따라 올라 온 것이다. 66호선은 모든 길을 받아들이는 모체요, 도주하는 자들의 길이기도 했다.  

- 어저께만 해도 당신네들 같은 이주민을 실은 차를 마흔 두대나 보았소. 당신들은 다 어디서 오는 길이요? 그리고 어디로 가는 길이오?

- 미국은 자유로운 나라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데 누가 무어라고 하겠어? 우리나라는 자유가 있는 나라가 아닌가? 글쎄, 그 얼어죽을 놈의 자유를 좀 찾아보구료. 당신이 돈을 내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자유만이 있는 거야.

-   여하튼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놈들은 다 거짓말을 해야 하고, 속여야 하는데 그래 놓고도 그걸 정당화 하거든요. 그게 중요한 점이요. 만약 당신이 가서 저 타이어를 훔치면 당신은 도둑이 되는거요. 허나 그 놈은 다 찢어진 타이어를 가지고 당신한테 4달러를 뜯어내려고 했으면서도 그걸 가지고 버젓이 사업이라고 하거든요.  

- 50대에서 60대의 차가 매일같이 이리로 지나가는데 애들과 세간살이들을 몽땅 싣고서 모두 서부로만 몰려가니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며 또 가서는 무얼하려는건지, 참… "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겠지요. 어디든 살러 가는 거 아니겠소? 그저 살 데를 찾아 가는거지, 다른 것은 없어요."  

- "하지만 이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를 모르겠단 말이오. 도대체 이 고장 일대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말이오. 다들 먹고 살 수가 없는 모양이오.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것도 다 틀린 모양이오. 좀 물어봅시다. 이 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소. 또 내가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다들 모르겠다는 사람들 뿐이오. 백 마일을 갈 기름을 얻기 위해 신발을 벗어 주겠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나는 꽤 여러군데를 돌아다녀 보았소. 모두들 그런 질문들을 하더군요. 결국 우리가 다 어떻게 될 거냐고 말이오. 우리가 어떤 결과에 도달하는 것은 아닐 거요.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안 하느냐구? 그들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소. 그들의 움직임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소. 왜 움직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우리는 알 수 있소.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니까 움직이는 거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거요. 그들은 그들이 처해 있는 형편보다 좀 더 나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소. 또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들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오. 그것을 원하고 그것이 필요하니까 가서 그걸 얻으려는 거지요. 그러다가 피도 흘리고 서로 미쳐서 싸우기도 하는 거요. 나는 여러군데를 돌아다녀 보았소. 그리고 당신같은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들어 보았소."

-   "그건 그렇지만, 이 나라가 어찌 되어가느냐 이거요? 내가 알고 싶다는 건 바로 그거요."

- "글쎄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알아듣겠소.  케이시가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당신은 같은 질문만 되풀이 하고 있으니 말이오. 나도 당신 같은 사람을 전에 본 적이 있소.  결국 당신은 무엇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똑 같은 노래만 부르고 있는 거요. 세상이 어찌 되어 가느냐?'고 말이오. 당신은 무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아니오. 온 세상이 움직이고 있고 사방으로 흩어져 가고 있소. 사방에 죽어가는 사람들 천지요. 아마 당신도 머지않아 죽을 거요. 죽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를거요. 나는 당신같은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소. 당신은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오. 다만 세상이 어찌 되어가느냐?'는 잠꼬대 같은 노래만 부르고 있단 말이오."

-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남자야.  

-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해야지요.  나도 확실히 말 할 수는 없지만 무슨 행운이나 악운 같은 것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내가 이 세상에서 한 가지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칠 권리는 없다는 것이지요.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지요. 남을 도와 줄 수는 있어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요."  

- 옛날 캘리포니아는 멕시코에 속했었고 그 땅은 멕시코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험상스러운 누더기를 걸친 다혈질의 미국사람들이 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땅에 굶주렸고 땅에 대한 소유욕이 대단했기 때문에 닥치는대로 땅을 차지했다. 사터(1803-1880, 캘리포니아를 개척한 독일인)의 땅을 훔쳤고, 궤레로(멕시코 대통령)의 땅을 훔쳤고 불하하는 공유지를 탈취해서 분할했고, 옥신각신 시비를 하고 싸우고, 광포하게 날뛰었다. 그리고 그들은 빼앗은 땅에서 총을 들고 지켰다. 집과 곳간을 세우고 땅을 개간해 곡식을 심었다. 이렇게 하면 임자가 됐고 임자라는 것은 다름아닌 소유권을 의미하게 되었다.

* 후버빌 - 1930년대 시 교외에 세운 실업자 수용 부락. 도회지마다 강의 한쪽 끝에는 후버빌이 있었다. 대공황시기 미국의 노숙자들이 지은 판자촌. 대공황의 책임소재를 두고 대대적으로 비난을 받은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름을 고안한 사람은 민주당 전국위원회 찰스 마이켈슨이라는 사람이었다.

- 재산이 너무 소수의 손아귀에 편중되면 결국 빼앗기고 만다.

- 대다수의 사람들이 춥고 배고프면, 그들은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힘으로 빼앗는다.

- 대지주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연합체를 구성했고, 난민들을 위협하고 살해하고 또는 가스를 뿌리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 자주 만났다. 그들은 언제나 한가지 공포감에 싸여 있었다. 즉, 30만이라는 대군중이 만약 어느 한 지도자 밑에 단합하여 움직이게 된다면 그 결말이 어떠하겠는가 라는 것이었다.

-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자기 기분을 자기 혼자만 속에 넣어 두어야 할 때가 얼마든지 있는거야.

- 산더미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 물이 질컥질컥 흐르는 것을 빤히 쳐다 보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는 낭패의 빛이 떠오르고, 꿂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의 포도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분노가 충만하고 그 포도 수확기를 위하여 알알이 더욱 무겁게 영글어 가는 것이다.

-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여보, 그렇지 않다니까요. 그게 바로 남자가 모르는, 여자만 아는 일이에요. 나도 그런 것을 깨달았어요. 남자는 한번씩 깡총깡총 뛰면서 살아요. 어린애로 태어나서 어른이 되어 죽잖아요? 그게 한번 뛰는 거지요. 논밭을 얻었다가 잃고, 그것도 한번 뛰는 거예요. 그렇지만 여자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흘러가는 물줄기 같은 거예요. 물이 조그맣게 소용돌이 치다가 작은 폭포도 이루고 하기는 하지만 결국 강물이니까 끝내 흘러 가거든요. 여자는 인생을 그렇게 보는 거예요. 우리는 결코 죽지 않아요. 사람들은 살아 나가게 마련이에요. 조금씩 변하기는 할 망정 계속 살아 나가는 것은 변함이 없어요."  

* 마무리 - 잠시동안 로자샤안은 빗소리만 소곤거리는 헛간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지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덧이불을 몸뚱이에 감았다. 그녀는 천천히 구석쪽으로 걸어가서 쓰러져 있는 얼굴과  그의 멍청하게 뜬 놀란 눈을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그의 옆에 누웠다. 그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로자샤안은 덧이불의 한쪽을 풀고 자기의 한쪽 젖가슴을 들어냈다. "이걸 빠세요. 그래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더 바싹 몸을 들이대고 그 남자의 머리를 끌어 당겼다.  "자, 됐어요. 어서요!" 그녀의 손이 그의 머리 아래로 들어가서 그를 받쳐 주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부드럽게 그의 머리카락 속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헛간 위쪽과 건너 쪽을 쳐다보았다. 딱 다물어진 그녀의 입술은 신비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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