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에도 없던 우중 라이딩을 했다. 2달여 전 집 앞 골목길에서 급하게 유턴을 하다 자전거가 넘어졌는데, 이후 브레이크 오일이 서서히 빠져나갔는지 앞바퀴 브레이크가 작동 불능이 되었다. 다행인지 뒷바퀴 브레이크는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여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다. 4~5년전에도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아 성내동에 있는 메리다 자전거 수리센터에서 A/S를 받았었다. 당시는 하남에 살고 있었고, 자전거 캐리어를 차에 설치하고 이동이 가능해 별 불편함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양평에 거주하고, 퇴직 후 자동차도 소나타로 바꾸었더니 자전거 캐리어를 장착할 수 없었다. 결국 성내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자동차에 실으려면 앞바퀴를 분리해 싣고 가야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양평 인근의 자전거 수리점을 찾았다. 여주보까지 라이딩을 하면서 자전거 수리점을 유심히 살펴 보고 있었는데, 이포보 앞에 '목수네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수리 해야지 하면서도 예상 가능한 감속의 경우는 뒷브레이크 만으로 충분히 제어가 가능해 자꾸만 미루었었다. 그러다 지난 10월 2일 C-8 라이딩 모임에서 강천보까지 다녀왔는데,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는 뒷바퀴 브레이크 만으로도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해 급히 정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뒷바퀴 브레이크 만으로는 제어가 불가능함을 느꼈다. 더 미루지 말고 앞바퀴 브레이크 수리를 하지 않으면 큰 사고를 당할 것 같았다. 오전에 딸 사는 곳으로 겨울 이불을 우체국 택배로 보내고 집에 와, 오후 2시경 브레이크 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 거리뷰를 확대하니, '목수네 자전거' 상호에 적힌 전화번호가 보인다.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전화를 하니 3시경 오면 좋겠단다. 나도 여기서 자전거를 타고 가면 30분 정도 걸릴테니 좋다고 약속했다. 이포보 앞 '목수네 자전거'에 도착하니 앞선 사람의 자전거를 손보고 있었다. 기다릴 수 밖에... 그런데 77세 되시는 분의 자전거 기어를 바꾸는 작업이 1시간 넘게 소요되었다. 결국 내 자전거는 4시 30분이 넘어서야 수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때 벌써 양평 방향 북쪽 하늘이 검게 어두워지고 있는것이 아무래도 날이 저무는 것이 아니라, 비구름이 몰려 오는 것 같았다. 앞, 뒤바퀴 브레이크 수리를 끝내고 기왕 수리점에 왔으니 스파이크 페달이 신발 바닥을 찢어놓아 평페달로 바꾸고, 후면경도 하나 새로 달아달라고 했는데, 페달은 스파이크가 없는 평페달이 없어서 교환을 하지 못했고, 후면경은 핸들바에 부착한 손잡이와 길이가 맞지 않아 부착할 수 없었다.
공연히 핸들바만 떼었다 붙였다 하다보니 시간만 흘러가고 먹구름은 더 짙어가더니 결국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아이쿠,,, 이걸 어쩌나... "많이 기다렸으니 수리비가 3만원인데 1만원을 깎아서 2만원에 해 준다며 비가 오니 조심해 가라"는 인사를 한다. 오후 2시만 해도 일기예보 상으로는 저녁에 비가 온다는 말이 없었다. 1만원 깎아주는 것보다는 좀 더 빨리 수리를 마무리했으면 비가 쏟아지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으련만… 어쩌나...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이포보 주차장을 지날 무렵, 일단 쏟아지는 비는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K-water 이포보 사업소 현관에서 비를 피하며 핸드폰을 꺼내 일기예보를 보니, 저녁 8시까지 비가 온단다. 순간 고민을 했다. 저녁 8시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비가 계속 오지는 않을테니 이 정도 비라면 맞고 가야 하나? 점점 굵게 쏟아지는 비가 이제 시작이니 언제 그칠지 모르고, 날도 점점 어두워 온다. 라이트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어둠이 짙어지면 가로등도 없는 강변 길을 달려가기 힘들것 같다.
출발...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달렸다. 도로는 이미 빗물로 웅덩이가 만들어져 피해 달릴 곳이 없다. 바람막이가 비를 막아주는 것이 다행이지만, 빗물에 덮인 도로를 힘주어 달려도 체온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한다. 신발도 빗물에 젖어 발이 차가워진다. 남한강변 자전거 길을 달리며 고개를 돌려 강을 바라보니 짙은 회색으로 변해 모든 생명체가 잠들어 있는 듯 하다. 점점 어둠은 짙어가고, 빗방울은 거세게 얼굴을 때리고, 비에 젖은 몸은 체온이 떨어지고, 메쉬 소재로 된 바지로 스며드는 빗물로 종아리는 수축되어 가고, 신발은 이미 빗물을 담고 갈 정도로 푹 젖었다. 갈 길은 아직도 20여분 더 달려야 하는데, 빗물로 들어 찬 도로 사정으로 속도까지 내기 어렵다. 나는 왜 하필 오늘 수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앞 선 사람의 수리가 조금 만 일찍 끝났어도 비를 맞지 않았을텐데... 등.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순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머리를 스친다. 그래 내가 언제 빗 속을 뚫고 어둠 속을 달려 보겠는가? 10여년 자전거를 타면서도 늘 일기예보를 살펴서 지금껏 한번도 비를 맞으며 타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누가 보면 이런 빗속에 자전거를 타다니 마친 사람 아냐?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어둠 속을 달리는 기분, 그것도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회색 도시가 아닌 짙은 회색 강변을 달려가는 기분은 돈 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듯한 외로움 속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었다. 화가 나려는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나타난 해탈의 경지. 해탈은 가진 것을 내려 놓아야,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을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기쁨이요 최상의 경지가 아닐까?
집에 도착하니, 더운 물에 샤워를 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자전거를 뒷편 데크에 서둘러 세우고 현관에서 젖은 옷과 헬멧, 신발, 양말을 벗고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가 샤워부터 했다. 아! 살것 같다. 더운 물이 경직되었던 근육을 풀어준다. 이 또한 우중 라이딩이 선사하는 즐거움이리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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