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신시장에 다녀왔다. 통영엔 3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새벽장과 해산물로 유명한 서호시장. 오전과 오후 낮시간에 문을 여는 중앙시장. 그리고 12시 이후에 열어 저녁시장이 활발한 북신시장. 북신시장은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려는 주부들이 주로 찾는 시장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특징을 알아보고 오후 2시 10분경에 버스를 타고 갔다. 현지인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큰 도로에서 시장골목으로 들어서면 입구엔 생선가게 2-3개 정도, 나머지는 채소와 조리반찬, 과일가게, 옷가게, 정도이지만 골목을 20미터 정도 들어가면, 시장 골목이 좌우로 다시 갈라지며 양옆으로 상점들이 도열해 있다. 중앙시장이나 서호시장과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현지인들이 필요한 장을 보기에 적당한 시장이다.
먼저 시장에 들어서면서 분위기부터 살핀다. 천천히 걸으며 시장 끝까지 가본다. 어디에 어떤 가게들이 있고, 어떤 가게에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지를 파악한다. 시장 끝에서 배낭에 넣어 가지고 온 장바구니를 꺼낸다. 첫번째 구매한 가게는 빨간 홍옥사과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던 과일가게. 올해 긴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과일가격이 비싸다며, 만원에 7개를 준다. 1개 더 넣어달라고 해도 안된단다. 카드로 계산하고 돌아서며 보니 고구마도 있다. 붉은색 흙이 잘 말라 있다. 고구마 12개에 만원. 다시 계산을 한다. 장바구니에 넣고 걸으며 초짜 티를 낸 것을 후회한다. 가게에 가서 살 품목을 둘러보고, 계산은 한꺼번에 하며 흥정을 해야 하는데, 개별 계산을 하니 흥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래시장에서의 흥정법 하나를 배운다. 두번째 가게에서는 두부 1모를 산다. 세번째로 할머니가 파는 야채가게로 간다. 아주머니들이 끊임없이 온다. 인기있는 할머니 가게인가 보다. 기억해 두자.
'콩나물 조금 주세요' 하니 봉지 가득 넣어준다. '혼자 먹으니 조금만 주세요. 남으면 버리게 되요'해도 더 넣고 덤으로 실파도 넣어준다. 콩나물 요리를 할때 넣어 먹으라는 배려가 따뜻하다. 감자도 산다. 아이 머리통만한 감자를 3개 5천원. 하지만 너무 큰 것은 한번에 먹기 버겁다. 주먹만한 감자로 바꾸어 달라고 해서 7개를 5천원에 샀다. 마지막으로 시장에 들어서면서 눈여겨 보았던 반찬가게로 간다. 팩에 얌전히 담겨 있는 두툼한 새우볶음 1팩과 쥐치포볶음과 오징어채볶음을 함께 담은 팩 1개를 각각 5천원에 구매했다. 덕진왈츠 옆 반찬가게보다 팩 크기도 크고 내용물도 충실하면서 맛도 뛰어나다. 앞으로는 이곳에 와서 마른반찬을 사서 먹어야겠다. 장바구니 가득 담고도 넘쳐 감자는 배낭에 넣었다.
오후 3시경 머리가 히끗히끗한 남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했던지, 많은 아낙들과 상인들이 쳐다 보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시장에서 장을 보는 남자는 나 혼자다. 예전같으면 쪽 팔린다고 꺼렸을 일이지만,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내 먹기 위한 재료를 내가 돈을 내고 사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일뿐, 나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나이는 먹은 것 같은데 초짜 티를 내며 장을 보러 나온 홀아비가 불쌍하군'이라는 눈초리도 느껴진다. '작은 것에 마음 쓰지 말자'는 그간의 명상이 도움이 된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장바구니에 담긴 야채와 과일을 보며 마음이 흐뭇해진다. 따끈한 된장찌개를 끓여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까지 따뜻해 진다. 고구마를 쪄서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모두 4만 1천원어치 장을 봐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이런 것이 소확행이 아닐까? 통영에 내려와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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