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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2023년 10월 10일 이젠 그만 들어와요.

   나의 마지막 가을. 

  양평에서 보내는 마지막 가을. 마지막이라는 말이 이리도 서운한 말이었던가? 청명하게 푸른 가을 하늘색이 마지막 가을을 더욱 서운하게 만든다. 작년에는 맑은 가을 하늘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었다. 동녁으로 솟아오르며 황금빛을 뿌리는 아침해가 그리도 황홀할 수 없었다. 오전 10시 무렵 잔디 마당에 쏟아지는 따스한 기운이 그리도 고울 수가 없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서면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의 핑크빛이 이리도 내 마음을 붙잡을 줄 몰랐다. 그저 양평 전원주택에서 맞이하는 모든 자연현상이 경이롭고 아름다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아내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내년에는 다시 아내 곁으로 가기로 하고 보니, 이곳 양평에서 주어지는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통영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르다. 어쩌면 이제 두번 다시 주어지지 못할 생활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도 크리라고 본다.

  100세가 되신 어머니를 케어하고, 마지막으로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도심의 아파트보다는 공기 맑은 전원주택으로 모시고 함께 사는 것 까지는 나쁘다고 할 수 없으나, 이런 이유로 본의 아니게 홀로 생활하게 만든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내가 혼자 식사하고, 홀로 TV보고, 혼자 지내면서도 불편하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따금 가서 보면 식사도 대충하고, 청소도 자주 못하고, 마음 붙일 곳 없는 임시생활하는 사람처럼 지내는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가끔 청소기를 가져가 청소를 해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광이 번쩍 번쩍 나네..."하면서 마지막 하고픈 말을 삼키곤 했던 아내의 심정을 내가 왜 몰랐겠는가? 여름을 지나면서 부쩍 집 안 이곳 저곳 손 볼 곳이 있다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던 아내의 마음을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그러던 아내가 추석을 지나면서 진지하게 말한다.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집으로 들어와요. 나도 당신이 없으니 집이 텅 빈 것 같고 외로워요. 그리고 나 혼자 먹자고 음식 만들어 먹게 되지 않으니 대충 한끼 식사 때우게 되더라고...어머니는 공기 좋고 시설 괜찮은 요양원으로 모시고 이제 우리 같이 삽시다. 당신도 이제 곧 70인데 어머니 요양원으로 모신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어요. 그리고 나도 1주일에 한번씩 양평에 갔다 오는 것도 이젠 힘드네요."한다. 아내 말도 맞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만 사셨던 어머니의 말년을 자연속에서 사시게 하자며 양평으로 모시고 왔건만, 그건 내 생각이고, 홀로 남은 아내의 외로움과 불편함은 생각지 못했다. 아내의 지인 가운데 한 분이 "당신 남편은 효자일지 몰라도, 아내 입장에서 보자면 지독한 이기주의자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내 사정을 곡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맞는 말이라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야 아들이니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시어머니를 케어한다며 아내를 홀로 두고 떠나버린 남편이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번엔 아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보니 이번 가을이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없다. 양평에서의 마지막 가을. 마지막이라는 표현은 아쉬움과 허전함과 서운함, 그리고 짙은 고독도 함께 수반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