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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2023년 10월 13일 버려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외장하드가 열리지 않는다. 저장된 자료만 1TB가 넘는다. 큰 일이다. 문제는 사소한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평소 핸드폰에 음악을 저장해 놓고 다니며 블루투스를 이용해 스피커로 재생하거나 이어폰으로 들었다. 그런데 서늘한 가을이 되니 첼로 연주가 듣고 싶었다. 해서 외장하드에 저장되어 있던 음악을 핸드폰으로 옮기고, 그러면서 핸드폰에 저장되어 용량만 차지하고 보지는 않는 사진 파일을 지웠다. 그런데 갑자기 외장하드가 버벅거린다. 외장하드 인식에 시간이 걸린다. 이럴땐 기다리며 다른 일을 해야 초조해 지지 않는다. 거실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1시간여 지나 올라와 보니 여전한 버벅거림. 문제가 있다 싶었다. 혹시 랜섬웨어? 생각이 들어 외장하드 전원을 껐다. 그리고 다시 1시간 여 지나 외장하드 전원을 켰는데, '디렉토리가 지워져 외장하드를 컴퓨터에서 인식하지 못한다'는 문구가 뜬다. 컴퓨터를 여러번 재부팅해도 마찬가지. 나의 모든 사진 자료와 음악 그리고 엑셀 자료가 날아가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자료 검색을 하니 MS 10으로 Upgrade되면서 외장하드 인식 불능 상태가 되었다는 글이 많다. 어쨌든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해결책은 내 능력을 벗어난 문제이다보니, 전문가의 조언을 듣던가 아니면 전문 하드 복구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하드 복구를 하는 두 가지 안이 떠오른다. 우선 영미씨 아들 범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녁식사를 하고 범수가 알려준 대로 복구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실행했는데, 외장하드 파티션 나누며 네이밍한 이름은 찾았지만, 열리지는 않는다. 복구 실패. 인터넷 검색을 하니 선정릉 인근 D4라는 업체명이 올라온다. 복구비는 10만원~20만원. 비용은 차치하고 외부업체에 내 정보가 담긴 외장하드를 맡긴다는 것이 꺼림칙하다. 내 정보를 빼내 나쁜 용도로 사용하거나 몰래 스파이 웨어를 심어놓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잃을 것은 사진자료와 음악데이터. 특히 사진자료는 2004년부터의 자료이니 양도 방대하려니와 잃어버린다면 2004년부터 2023년 사이의 내 기억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되돌리지 못 할 내 과거지만, 또 한편으로는 희미해져 가는 과거를 붙들고 몸부림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몸부림쳐서 얻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니 버려야 할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 놓기만 하는...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도 못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빼앗기는 멍청한 짓을 겪으면서도, 부지런하게 도토리를 가져와 숨겨놓는 멍청한 다람쥐가 바로 나임을 알게 되었다. 지나간 과거 사진이 중요할까?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작품이라도 될까? 과거의 사진을 들추어 보면서 귀중한 깨달음을 얻기라도 할까? 아니다... 1년에 단 한번도 찾아보지 않는 사진들. 어쩌면 이미 빛 바랜 사진이 되어, 내 허영심의 찌꺼기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사진. 지워야 할 과거는 지우고, 버려야 할 추억은 버려야 새 것이 들어 설 자리가 생긴다. 당장 버려도 현재의 삶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으나 뭔가 허전한 구석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조금만 더 고민해 보자.. '고 유혹하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