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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2023년 10월 18일 천년의 미소, 그리고 천년의 고뇌.

    천년의 미소, 그리고 천년의 고뇌. 

  좀 더 정확하게는 1400여년의 미소와 1400여년의 고뇌. 바로 국보 옛 제 78호 반가사유상과 국보 옛 제 83호 반가사유상이 짓고 있는 얼굴 표정을 말한다.  학창시절에는 국립박물관이 있다는 사실과 무엇이 전시되어 있는지 조차 몰랐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는 시간에 쫓긴다는 핑게로 가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60 중반이 되고, 퇴직한 후 3년이 되어서야 찾아간 국립박물관. 마침 내가 거주하고 있는 양평에서 경의중앙선을 타면 환승하지 않고도 이촌역에 내리면 연결통로를 걸어서 쉽게 갈 수 있었다. 1시간 30분 전철을 타고 도착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언덕을 올라 첫 눈에 들어 온 건물 외관부터 탄성을 짓게 했다. 우측의 주 전시실 건물과 좌측의 부속건물 사이의 열린 공간을 통해 보이는 남산 타워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박물관에 들어 선 시간이 10시 28분. 운이 좋았는지 10시 30분부터 진행되는 약 1시간 가량 전문 해설사가 대표 소장품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해설해 주는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부터 시작해 반가사유상이 전시된 사유의 방까지...'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 말은 여행에만 국한되는 표현이 아니었다. 전문해설사가 전해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가치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처음 놀이공원에 들어 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을 끌어당기고, 발목을 붙잡고, 혼이 나간듯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던 전시물이 바로 '반가사유상'이었다. 전문해설사의 대표 유물 안내가 끝나자, 나는 반가사유상이 전시된 '사유의 방'으로 달리듯 찾아갔다. 사유의 방 입구에 흐르는 음악과 동영상부터 천천히 내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자료에서 가져 옴

깊은 산을 넘나드는 안개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왔다가 사라지는 파도인지... 직사각형의 커다란 화면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존재의 부질없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 앞에 나타난 두 점의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자료에서 가져 옴

  좌측의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의 '금동반가사유상'이고, 우측은 7세기 전반의 금동반가사유상이다. 사유의 방 뒷편에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내 마음을 열어본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자료에서 가져 옴

그리고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 그런데 이리저리 살펴 보고, 이모저모 뜯어 보고, 왔다갔다 하며 보아도 뭔가 내가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침내 사유상의 눈길이 내려오는 3미터 쯤 되는 거리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춘 다음, 다시 사유상을 올려다 본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좌측의 반가사유상은 나에게 이렇게 미소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그래, 됐어! 그만 하면 됐어! 참 고생 많이 했구먼! 자네 그동안 힘들었다는 것 내가 알아!"....  한동안 그렇게 무릎을 꿇고 사유상을 올려다보며 나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은 시간 여행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자료에서 가져 옴

그리고 다시 우측의 반가사유상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자세를 낮춘 다음 사유상을 조용히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우측의 사유상은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 고뇌를 하는 모습이었다. 고뇌하면서 이렇게 알듯 모를 듯한 말을 내게 건네는 것 같았다. "고민이로다. 알려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알려 주면 괴롭다 할 것이고, 알려 주지 않으면 왜 그때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더욱 괴로워할 터인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하는 듯한, 미소를 지은 듯 하면서도 바라 보는 이를 걱정하는 고뇌가 혼합된 복합적인 모습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자료에서 가져 옴

그러고 보니 좌측의 사유상은 허리를 세운 듯 가벼운 자세이고, 우측의 사유상은 생각하는 고뇌의 무게에 눌린 듯 좌측의 사유상보다 조금 더 굽어진 자세를 하고 있었다. (뒤에서 보면 좌/우가 바뀐다.) 여기서 불현듯 원효대사가 외쳤다는 '일체유심조'가 떠올랐다. 모든 사물은 보는 이의 주관에 따라 달리 보인다. 생각하는 대로 보인다는 말이다. 나는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자료에서 가져 옴

                                                                                                                                                                                              반가사유상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2022년 KBS Documentary로 제작되었던, 1부 '구원의 미소'와 2부 '청춘의 초상'을 유투브에서 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한다'는 반가사유상. 불교의 본산지인 인도에서의 사유의 의미, 서양문명에서의 그리스 신의 조각상들이 보였던 미소, 이집트 신들이 보였던 고뇌의 자세를 보면서 서양 문명보다 뛰어난 정신적 문명을 이루었던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자부심과 걱정이 동반되었다. 우리도 세계 어떤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찬란한 문화를 가졌다는 자부심과 이런 문화를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는 국력을 가져야 한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그것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그리고 러시아 에르미타쥐 박물관은 크기와 전시물의 다양성에 경이를 표하지만, 사실 거의가 자신들의 힘이 왕성했을 때 다른나라의 유물을 빼앗아서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지 않은가? 나라의 힘이 있으면 외국의 문물이라도 가져올 수 있었고, 힘이 없으면 다른 나라에 빼앗겼다. 우리도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많은 국가 유물을 외국에 빼앗긴 아픔의 역사가 있지 않은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기획한 분들께 박수를 보내며, 뒤늦게 박물관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이어령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과거를 알려면 검색을 하고, 현재를 알려면 사색을 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을 하라. 오늘날의 과거는 거의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으니 검색을 하면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국립박물관을 다녀 온 뒤로는 검색과 발품을 파는 견학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넓은 전시실 1층부터 3층까지, 세심하게 진열하고 설명을 적어놓은 모든 것을 살피면서 당시대의 사람들과 호흡하려면, 하루에 1개의 전시실을 살피기에도 벅찰 것 같다. 아마도 나의 박물관 순례는 적어도 1년은 지속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