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 2악장, Allegreto Quasi Menuetto.
오늘 아침 5시에 잠이 깨었다. 사방은 고요하고 어둠에 잠겨 있다. 아직 잠자고 있는 세상을 깨우려면, 잠에서 반쯤 기어나온 나를 깨우기에는 음악이 최고다. 어제 저녁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기온과 거센 바람에 오늘 아침엔 섭씨 3도까지 곤두박질했는데, 이럴때 듣기 좋은 음악은 첼로연주가 딱이다. 첼로모음곡 100선을 스피커에 연결하고 다시 침대로 올라간다. 차가워진 날씨를 핑계로 따뜻한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워 본다. 첼로 연주를 들으며 30여분 뒤척거리다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어둠속에 짙은 실루엣으로 산능선이 그려진다. 짙은 어둠이 아주 천천히 물러나면서 나무 숲의 실루엣이 선명해질 무렵, '어! 이건 뭐지?' 온 몸으로 느껴지는 전율!
브람스의 첼로협주곡 1번. E minor. Op.38. 2악장 Allegreto Quasi Menuetto. 추운 겨울을 데리고 오는 차가운 가을날 이른 아침. 부드럽고 조용히 감싸듯 흐르는 첼로의 선율을 배경으로, 빠르지 않으나 춤추듯이 다가오는 피아노 선율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치 이른 아침의 어둠처럼 저음의 첼로 선율이 가득차면, 서서히 어둠을 밀어내면서 사위가 밝아져 오는 듯 피아노 선율이 춤추며 오늘 하루도 멋진 날이 될 것이라 속삭이며 다가오는 것 같다. 아! 이렇게 멋진 음악을 그동안 내가 몰랐다니... 아니 절묘한 시간에 듣는 기회를 갖지 못하다니... 브람스 음악이 보여주는 북유럽의 잿빛 하늘 가득한, 쓸쓸함 가운데 자유를 느끼게 하는, 첼로 소나타는 늦가을 특히 어둠이 벗겨지지 않은 이른 새벽에 홀로 일어나 들어야 오롯한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Frei aber Einsam' 나는 오늘 아침, 평소 좋아하던 브람스의 음악에 다시 빠졌다. 첼로 소나타 1번 2악장을 두 번 연속해 듣고 나니 따끈한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주방으로 내려와 커피부터 볶는다. 그제 로스팅하고 맛을 본 Ethiopia Karamo Niguse는 나 혼자 마시기에는 너무 아까워 어제 아내에게 로스팅한 것을 전부 주고 왔었다. 아내도 연신 감탄하며 Hand-drip을 2번이나 하게 했다. 커피잔에서 풍기는 상큼한 꽃향과 입안에 감도는 고소함 그리고 목젖을 감싸고 흐르는 쵸콜릿의 맛은 파나마 게이샤를 연상하게 하는데, 2020년 C.O.E 커피 경매대회에서 1등을 한 커피라고 한다. Karamo 농장은 에티오피아 일반 농장의 1,500m ~ 1,800m 보다 월등히 높은 2,380m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커피노트를 살피니 플로럴, 블랙베리, 블랙커런트, 청사과, 호두강정, 아몬드 초콜릿이 적혀 있다. 혼자 감춰 두고 기분 좋은 날 꺼내 마시고 싶은 커피다.
커피를 마시고 2층 서재방으로 올라오는데 층계참에도, 집 안 가득 커피향이 퍼져 있다. 커피를 로스팅 한 다음 실내에 가득 배어 있는 고소한 커피향을 흠향하는 즐거움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고등학생 때 배웠던 이효석 선생의 대표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 다음과 같은 묘사가 나온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엣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어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도대체 커피를 볶을 때 나는 냄새가 어떤 것인지 알수가 없었기에 이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커피를 좋아하고 셀프 로스팅을 하면서 커피 볶는 냄새를 알게 되었고, 개암이 바로 '해질녘, Hazelnut'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커피를 볶고 나면 집 안 가득 스며든 커피향을 즐기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 우연하게 다가온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와 역시 우연하게 구매해 로스팅한 Karamo Niguse의 커피향과 맛이 오늘도 멋진 날이라고 내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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