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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2020년 10월 15일 내가 선 자리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에서 백미는 지리산과 덕유산 능선을 보며 달리는 구간이다. 남쪽나라 통영에 살다보니 모르고 있었는데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지리산과 덕유산의 8부 능선을 경계로 정상부근은 붉은 단풍이 들었고, 아래쪽은 녹색빛이 사위여 가고 있다. 그런데 누가 저리도 반듯하게 선을 그어 놓았을까? 8부 능선을 기준점으로 이상과 이하의 구분이 아주 또렸하다. 특히 멀리서 능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보면 더욱 명확하다. 세부적으로 살핀다면 햇살이 잘 드는 곳과 그늘져 찬 바람이 부는 곳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체적인 큰 그림으로 본다면 햇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도, 응달진 북쪽에 자리한 나무도 똑같이 8부능선을 기준으로 선을 그어놓은 듯이 위쪽과 아래쪽이 다르다. 수목한계선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내가 선 자리를 탓할 필요가 없다. 조금 높은 곳에서 예쁜 단풍으로 치장했다고 자랑할 일도, 조금 낮고 구석진 곳에서 시들어 가는 녹색 옷을 늦도록 입고 있음을 부끄러워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시간이 흘러, 때가 무르익으면 너도 나도 예쁜 단풍 옷으로 갈아입는다. 단지 1주일 먼저 혹은 2-3일 빠르거나 늦을 뿐이다. 큰 그림, 거대한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같이 변하는 것이다. 내가 선 자리, 내가 서 있는 이 시간은 흐름에 차이가 없다. 공정하고 공평하고 예외가 없다. 눈을 들어 멀리 큰 그림을 보자. 다툼과 갈등, 미움과 증오는 미시적 이기심에서 탄생한다. 작은 것에 집중하고, 내 앞만 바라보게 된다면 스스로를 작은 틀 속에 가두는 것이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크게 보자, 멀리 보자, 자연의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