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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중국여행

4 서주 초패왕 묘

 서주에 있는 항우의 묘를 보기로 했다.

앞에 있는 항우의 동상 뒤로 보이는 건물이 항우의 묘.

우연히 농부가 밭을 갈다가 발견했다고 하는데, 항우의 묘를 발굴하고 나서 그 위에 지붕을 씌운 건물을 세워 외부에서 보면 마치 기념관으로 보인다.

초패왕 [楚霸王]  [명사]<인명> ‘항우 달리 이르는 .

중국 진()나라 말기에 유방(劉邦)과 천하를 놓고 다툰 무장.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봉기하여 진군을 도처에서 무찌르고 관중으로 들어갔다. 진을 멸망시킨 뒤 서초 패왕이라 칭했으나 해하에서 유방에게 포위되어 자살했다.

 건물을 들어서면 이렇게 거대한 지하묘로 내려가는 통로가 나온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저 밑에 사람들의 크기로 그 깊이를 짐작 할 수 있다.

인터넷에 나온 초패왕에 대한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항우가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제패하자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왕호를 취하기 위해 범증(항우의 책사)을 불렀으나 범증이 왕호를 짓는 능력은 자신보단 장량이 더 뛰어나다고 하며 장량을 불렀습니다 (장량을 부른 숨겨진 이유는 책을보면 나옵니다) 

장량이 말하기를 3황 다음에는 5제가 있고 황제,전욱,제곡,,순으로 ''란 살인을 행하지 않으며 무력을 쓰지 않고 천하를 순리대로 다스리는 임금을 일컫는 존호인데 이것을 쓰시겠냐고 묻자, 항우는 자신이 자영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으니 제라는 칭호를 사용치 않겠다고 하자 장량이 5제 다음으론 3왕이 있다하며 3왕은 검소하고 부지런하여 인()이 투텁고 의()를 존중하며 백성을 위해서 살았다 하자 항우가 자신이 행하는 바와 똑같다며 맞장구를 치고 그 외의 것은 없냐고 물어보자 

장량이 말하기를 왕 다음으론 5패가 있으며  의로운 것을 숭상하며 강대하여 만인이 두려워 했다하자 항우가 그것 역시 좋다고 하며 왕호가 좋긴하지만 시대에는 맞지않고 패호는 지금 시대에 맞긴 하지만 존호의 덕이 느껴 지지 않는다 하여 둘을 합쳐 패왕이라 칭한다 하고 자신은 초나라 태생이고 회하 이북을 서초라 하니 자신을 '서초패왕'이라는 존호를 쓰겠다고 하였습니다."

 지하에  돌을 반듯하게 깍아서 만든 묘실.

항우와 관련된 속담. 고사성어(?)
1. 
항우는 고집으로 망하고 조조는 꾀로 망한다
2. 
항우도 댕댕이넝굴에 넘어진다
3. 
사면초가

 항우가 누워 있었다고 하는 위치에 관이 있다.

초패왕 항우의 모습이다. 키는 약 172cm. 나이는 35 - 37세로 추정된다고 한다.

 초패왕 지하 묘로 내려가는 계단과 묘 전체를 건물로 뒤덮어 버렸다.

두부 자르듯이 반듯하게 땅을 파서 지하묘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저 계단을 내려갈때 마치 인디애나죤스에 나오는 한 장면을 내가 실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천장에서는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하고, 실내는 조도를 낮추어 조명으로 신비로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진시황릉이 발굴되고 있는 시안에서만 병마용이 출토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모습을 한 토용들.

 초패왕 무덤에서 나와 언덕을 넘으면 수많은 토용들이 발견된 기념관이 있다.

실제로 발견된 토용 위에 유리관으로 씌워 관람을 돕고 있다.

일반 백성들인것 같은데, 이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왜 남자들은 오른손을 반쯤 들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다른 표정을 하고 남자, 여자, 어른, 아이가 뒤섞여 있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으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진시황릉에 있는 병마용은 사람 등신과 마찬가지로 170 - 175센티미터의 키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 초패왕 무덤에서는 사람 손바닥 크기인 약 20센티미터 정도로 축소된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는 전투병사들이다. 등에는 활통 같은 것을 매고 있는 토우도 보인다.

홀로 누워 있는 애절한 표정의 여인상 토우가 당시의 모습을 말해 주는 듯하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병마용의 발굴 당시의 사진.

 1995년 사자산 언덕에 있는 초패왕 무덤을 발굴한 다음, 유적 보호를 위해 무덤 전체를 건물로 덮어버렸다.

기마상도 있다.

 영화 A.I가 뇌리를 스친다. "오늘 제작되지 않은 1개의 토우가 섞여 있다, 누군가?"

 천하장사였다는 항우의 모습.

진시황의 사후에 벌어진 유방의 한나라와 항우의 초나라가 싸울때 사용되었다는 병기들의 모습이다.

이때에도 말이 끄는 마차가 있었고, 바퀴가 있었다고 한다.

설명에는 원형의 바퀴와 바퀴살을 발명(?)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고 한다.

나무로 된 바퀴의 가장자리에는 다시 철로 덧씌워 내구성을 높였다.

기념관에서 다시 언덕을 하나 넘으면, 호수가 나오는데 그 호수 지하에 또 거대한 병마용갱이 있다.

바닥에 나뒹구는 깨져버린 말의 토우.

뒷다리의 근육이 선명한 것이 마치 살아있는 듯 하다.

기마병의 모습. 이전의 병사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크기도 사람키 만큼 크게 만들었다.

초패왕 무덤과 병마용 기마용을 보고 나오면서

중국인들이 자부심을 느낄만한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발굴중이라는 진시황릉은 그 규모가 어느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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