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원에 피는 義
티끌 자욱한 이 땅 일을 한바탕 긴 봄꿈이라 이를 수 있다면, 그 한바탕 꿈을 꾸미고 보태 길게 이야기함 또한 부질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같은 냇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때의 흐름은 다만 나아갈 뿐 되돌아 오지 않는 것을, 새삼 지나간 날 스러져 간 삶을 돌이켜 길게 적어나감도, 마찬가지로 값진 종이를 헛되이 버려 남의 눈이나 머리만 어지럽히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하되 꿈 속에 있으면서 그게 꿈인 줄 어떻게 알며, 흐름 속에 함께 흐르며 어떻게 그 흐름을 느끼겠는가.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하고, 흐름이 흐름인 줄 알려면 그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 땅 끝에 미치는 큰 앎과 하늘가에 이르는 높은 깨달음이 있어 더러 깨어나고 또 벗어나되, 그 같은 일이 어찌 여느 우리에게까지 한결 같을 수가 있으랴. 놀이에 빠져 해가 져야 돌아갈 집을 생각하는 어린아이처럼, 티끌과 먼지 속을 어지러이 헤매다가 때가 와서야 놀람과 슬픔 속에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인 것을. 죽어서 오히려 깨어난 삶과 흘러가버려 도리어 멈추어진 때의 흐름에 견주어 보아야만 겨우 이 한살이(일생 一生)가 흐르는 꿈임을 가늠할 뿐인 것을.
- 창천(蒼天)에 비끼는 노을
정치로부터 그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민중은 종교가 내세우는 축복과 구원을 믿고 기대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이 밝은 치자(治者)는 민중이 지나치게 종교에 빠져드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헤아림이 깊은 식자(識者)는 오히려 그걸 근심한다. 어떤 가르침의 참됨과 거룩함은 종종 믿는 무리의 늘어남과 세속적인 가멸음(富)이 쌓임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열에 아홉은 정치로 춥고 허기져 찾아간 민중의 몸과 마음을 더욱 헐벗고 굶주리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믿음과 우러름을 받아온 가르침에서조차도, 그 회당이나 사원이 가장 크고 화려하며 요란한 말과 몇 푼의 돈으로 구원을 사려는 무리가 가장 많을 때가 바로 그 가르침이 가장 썩고 더럽혀진 때와 일치함을 자주 볼 수 있으니, 하물며 출발부터가 세상을 속이고 사람의 눈과 귀를 홀리는 사된 가르침에 있어서랴.
후한(後漢)도 저물어가는 영제 때의 세상이 또한 그러하였다. 조정이 썩어 모든 관리가 벼슬하는 도둑놈, 즉 관(官)비(匪)라 불릴 지경이 되니,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은 자연 요사스런 가르침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 외척과 더불어 후한 사회를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한 환관의 화는 이미 멀리 화제때 부터 시작되었다. 환관이 정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중상시가 되고 난 뒤인데, 원래 넷 밖에 두지 못하게 된 그 중상시가 열 명으로 늘어나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면서 외척과 견줄 만한 세력으로 자라난 탓이었다. 그러나 외척의 권위는 황제가 바뀌거나 섭정하던 모후의 죽음으로 흔들리게 되지만, 환관은 비교적 영향이 적어 그 뒤 몇차례의 권력 다툼에서 환관은 항상 이길 수가 있었다. 두번에 걸친 '당고의 화(환관들이 깨끗한 선비들을 당인(黨人)으로 몰아 내쫓은 일종의 당파 싸움)'를 일으커 또 하나의 적대 세력인 이른바 청(淸)의(議)라는 선비들을 저정에서 내몰고 죽이자 세상은 온전히 환관의 것이 되고 말았다. 황제는 흔히 십상시라고 불리는 열 명의 환관들에게 둘러 싸인 허수아비가 되고, 착하고 어진 이들이 모두 떠나 버린 조정에는 환관들과 선을 댄 간신배들만 득실거리게 된 까닭이었다. 환관들은 개인적인 탐욕이나 그 위세에 기댄 피붙이들의 횡포로도 나라에 큰 해를 끼쳤지만, 무엇보다도 큰 잘못은 황제에게 권하여 공공연히 벼슬자리를 판 일이었다. 돈으로 산 벼슬이고 보니 모든 벼슬아치들은 그 밑천 뽑기에 바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세금이 한 해 수확량의 몇 배에 이르기도 했다. 때로 외상으로 벼슬을 팔기도 했는데, 그때는 벼슬자리의 값이 현금 때의 두 배 이상이었다고 한다.
* 유비의 스승 노식이 말한다. "무릇 권세란 재물과 같아서 위로 높은 묘당(廟堂)의 것이건 아래로 낮은 민초들 사이의 것이건, 가지면 가질 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다. 이미 말했듯, 태평도의 무리 역시 지금은 백성들 사이의 사사로운 믿음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이대로 세력이 불어나면 머지않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처음에는 따르는 무리만으로 만족할 지 모르나, 차츰 힘이 생기면 관부를 얕보게 되고, 마침내는 천하를 넘보게 될 것이 뻔하다. 실로 이 스승이 근심하는 바다..."
* 진정한 난세가 이르면 필요한 것은, 문장이나 학식이나 사사로운 수양이 아니라, 그것들을 활용하고 실천하는 힘이다.
* <태뢰(太牢)의 소를 아느냐?> <네.> <뿔이 곧고 잡털이 섞이지 않은 소를 골라 콩을 먹이고 비단으로 소를 치장함은 그 소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의 제사에 그 고기를 쓰고자 함이니, 어리석은 소는 백정의 도끼가 정수리에 떨어질 때에야 비로소 슬퍼한다. 벼슬도 그와 같으니, 내 그걸 말리려고 자간을 찾아가는 길이다.>
* 누운 용 엎드린 범 *
전통적인 또는 기성의 권위가 낡고 부패하여 흔들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지식인 계층이다. 그들의 섬세한 감각은 일반 민중들이 아직 그 흔들림을 느끼기도 전에 벌써 붕괴의 예감에 떨며 괴로워한다. 이때 그들이 보여주는 반응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통의 권위를 옹호하는 쪽으로, 그들은 자기들이 의지해 온 권위가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그 회복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동양에서 각 왕조의 교체가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충신 열사가 그들이며, 서양의 개혁기에도 또한 어김없이 나타나는 극단의 반동주의자가 그들이다. 다른 하나는 전통의 권위로부터 탈주하는 쪽이다. 그들 중에 야심과 능력을 겸비한 자는 스스로 새로운 권위가 되어 기존의 체제에 도전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자는 나름대로 선택한 새로운 권위를 위해 낡은 권위를 타도하는 데 앞장 선다. 그들을 지배하는 열정의 근원은, 자기들의 권위가 새로움이며 그 선택이 모험이라는 점으로서, 좋은 뜻으로는 혁명가이고 나쁜 뜻으로는 반역자라 불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살펴 보고 싶은 것은 그들 탈주한 지식계급 또는 대항 엘리트의 유형이다. 혁명을 향한 열정과 재능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대략 네 가지가 되는데, 그 첫번 째는 열정도 재능도 없이 혁명에 참가한 이들이다. 이들은 머릿수를 채우는데는 혁명에 도움을 주지만,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는 점에서는 없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 사소한 이해나 은원에 휩쓸려 혁명에 가담하거나 반체제의 선전에 충동되어 모인 일시적인 다중의 대부분이 이들이다. 두번째는 혁명 운동에 필요한 재능, 즉 음모와 조직과 선동의 능력은 있으나 열정과 그에 따르는 신념이 없는 부류이다. 이들은 혁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안은 놀랄만 한 일을 한다. 그러나 기성의 권위가 뜻밖으로 완강하게 버티거나 거세게 반격해 오면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대항 집단에 입히게 된다. 거사 직전의 밀고, 결정적인 시기의 변절 따위가 이들의 솜씨이며, 때로 이들에게 있어서 반항은 혁명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조건으로 기성의 권위 체제에 수용되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지기 까지 한다. 세번째는 앞서와 반대로 혁명에 필요한 재능은 없고 열정만 있는 부류이다. 이들은 모든 혁명 운동에 있어서 힘의 원천이며 마지막 보루이다. 그러나 또한 가장 많이 희생하면서도 가장 적게 얻는 것이 이들이다. 어떤 혁명에서도 그 과실은 이들의 것이 되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들에게 돌아가는 유일한 과실인 공허한 말의 성찬조차도 누군가에게 가로채이고 만다. 마지막이 열정과 재능을 한 몸에 모두 지닌 경우이다. 이들이야말로 모든 대항 집단의 핵심세력이 되며 미래의 새로운 권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이들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권위의 틀인 제도를 위주로 한 혁명으로 사회를 밑바닥에서부터 뒤엎는 극단한 양상을 보이는 한편, 다른 하나는 귄위의 담당자를 위주로 하는 경우로, 개혁의 정당성만 확보되면 그 이전의 제도를 계승, 답습하는 부분적인 혁명이 되고 만다.
* 지혜와 속임은 전혀 다르다. 속임은 요행을 바라는 거짓이요, 지혜는 어떤 경우에도 어그러지는 법이 없는 일의 바른 꾸밈이다. 그는 요행 거짓으로 도적 떼를 물리쳤을 뿐, 도적들이 대항해도 이길 수 있도록 일을 꾸몄던 것은 아니다. 간사한 꾀에 지나지 않는다.
* 조조 왈 "그래도 나는 사백년의 세월이 가진 힘을 안다. 나는 그 힘을 거스리기 보다는 그 힘에 의지해 내 뜻을 이루리라. 나는 결코 한실을 저버리지 않는다."
* 손견 왈 "거기다가 더욱 때를 앞당겨 주는 것은 명분의 혼란일세. 세상이 평온할 때 지킬 대의는 언제나 외길일세.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대의도 따라서 어지러워지네. 지금도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 도적들은 오히려 의를 내걸고, 당당해야 할 관리들은 거꾸로 도둑으로 몰리고 있네. 이렇게 나가다 보면 백성들은 점점 더 어느 쪽에 옳은 명분이 있는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마침내는 힘이 곧 대의가 되는 시대가 오고 말 것이네. 바로 영웅들이 묶여 있던 명분의 사슬에서 풀려나 저마다 새로운 명분으로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시대 말일세."
* <유비>
칠 년 전 노식의 문하를 떠나 누상촌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돗자리 짜는 일을 생업으로 삼아 저자 바닥에서 출발했지만, 세상은 언제까지고 그를 버려 두지 않았다. 짧으나마 노식의 문하에서 닦은 학문과 인품, 부호인 집안 아재비 유원기의 변함없는 후원, 인근의 유력한 자제들이거나 군리로 있는 동문들과의 유대, 촌수로 따지면 멀지만 그래도 한실의 종친이란 신분 같은 것들은 그가 몸 둔곳이 낮고 천했기에 더욱 빛이 났다. 그가 저잣거리에 나오고 서너 해 뒤 탁군 현령이 되어 온 공손찬도 유비에게 남다른 관록과 위엄을 더해 주었다. 공손찬의 비호가 그로 하여금 관부까지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듯 행세할 수 있게 해 준 덕분이었다. 거기다가 타고난 관후함과 침착은 곧 그를 탁현 저자 바닥을 중심으로 한 유협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만들었다. 사마천이 사기의 '유협열전' 앞머리에다 "유자(儒者)는 글로써 법을 문란케 했고, 협자(俠者)는 武로써 법이 금지하는 일을 범했다."라고 쓰고 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그런 유협집단은 바로 변혁의 원동력으로 바뀐다. 민중들도 썩고 무능한 관리나 이미 지켜지지 않는 법보다는 그들 편에 서 있는 유협 집단과 그들의 힘에 의지하려 든다. 그리하여 그런 그들의 집단적 반항은 일반적으로 도둑 떼의 노략질과 달리 기(起)의(義)라고 불리워지며, 중국 역대 왕조를 여는 태조(太祖)들 가운데서도 유협 출신을 적지 않이 볼 수 있다.
유비는 쓸데 없는 울적함에 오래 빠져 있지는 않았다. 기다린다. 오래 참고 기다린다. 그러면 언젠가는 때가 오리라.
세상이 어지러울 수록 중요한 건 대의야. 힘과 술수로만 남의 기업을 빼앗는 것은 옳지 못할 뿐더러 천하 사람들의 신망을 잃게 되는 첩경이지.
* <제갈공명>
"제가 어머님의 일로 마음이 어지럽기가 얽힌 삼타래 같아서 잊은 말이 있습니다. 이곳에 학식과 재주가 빼어난 선비가 있는데 양양성 밖 이십리에 있는 융중이란 곳에 숨어 지냅니다. 사군께서는 어찌하여 그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 보지 않으십니까?" " 그 사람은 몸을 굽혀 누구를 찾아 올 사람이 아닙니다. 사군께서 몸소 가셔서 데리고 나오도록 해보십시요. 만약 그 사람만 얻을 수 있다면 옛적에 주나라가 여망(강태공)을 얻은 것이나, 한이 장량을 얻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성은 주자 성 제갈씨요, 이름은 亮(밝을 양), 자는 공명이라고 합니다. 그는 원래 낭야군 양도 사람으로 한 사예교위를 지냈던 제갈풍의 후손이 됩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은 규요, 자는 자공인데 일찍 태산군의 승을 지냈으나 젊어서 죽고 그는 숙부인 현에게서 자랐지요. 그런데 제갈현은 유표와 예부터 아는 사이라 의지하여 살러 오다 보니 가솔들을 이끌고 양양으로 옯겨 앉아 살게 된 것입니다. 숙부인 제갈현이 죽은 뒤 제갈양은 그 아우 균과 스스로 밭을 갈며 남양 땅에 살았습니다. <양(梁)보(父)음(吟)>이란 노래를 즐겨 부르며 또 살고 있는 곳에 와룡강(臥龍岡)이란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 이름을 따 스스로를 와룡선생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 <관우>
이름은 관우, 자는 본시 장생(長生)이었으나 요즈음은 고쳐 운(雲)장(長)으로 쓰고 있소이다. 하동 해량현이 고향인데, 어떤 일로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 떠다니다가 이곳 탁군에 와 숨어 산 지 몇 해 되오이다. 여덟자나 되는 키에 근골로 뭉쳐진 어깨, 범의 머리에 고리눈을 부릅뜨고 수염과 머리는 올올이 곤두선 채 우레 같은 기합소리와 함께 내지르는 장비의 창을 한 자루 긴 청룡도로 받아치는 상대는 아홉 자 키에 얼굴은 무르익은 대춧빛이요, 검은 수염은 가슴까지 드리운 장한이었다. 장세평이란 자가 탁군일대에서 말 장사로 생긴 이익의 태반을 유비와 그가 거느린 협객들에게 바쳐 탁군 일대의 말시장 독점과 아울러 장삿길의 안전을 구해왔다. 그런데 몇 달 전 역시 중산국의 호상인 소쌍이란 자가 탁군의 말시장을 노리게 됨으로써 소쌍의 패거리와 장비가 노상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사태에 이르렀다. 하동 解(해) 땅은 예부터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외다. 그런데 오륙년 전 못된 토호 한놈이 한편으로는 관부에 줄을 대고 다른 한편으로는 힘깨나 쓰는 건달들을 사 그 소금밭을 오롯이 하고 소금장수들의 고혈을 빨기 시작했소. 특히 십상시의 우두머리 장양의 조카인 현령 놈과 배가 맞아 형이야 아우야 하며 지내니 그 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소이다. 그래서 어느 날 두 놈의 술자리에 뛰어들어 모두 베어 죽여 버렸는데 그게 관부의 쫓김을 받게 된 내력이요. 관우는 장비보다 여섯 살 위고, 유비는 장비보다 한 살 많다.
관공에게는 변혁의 필요성이나 민중의 개념은 거의 고려 밖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변혁을 갈망하고 기대 심리에 빠져 있는 그 민중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한 할 일 없는 문사의 터무니 없는 추측일는지 모르긴 하되, 혹 그것은 역사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중국 민중들의 본능 속에 거듭 쌓여 온 변혁에 대한 불신과 경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보다 거창하고 본질적인 의를 내세우고, 달콤한 실리로 그들을 앞뒤 없이 꾀어댔던 그 수 많은 역사의 새 아침들이 기껏 나라의 이름과 제실의 성씨가 바뀐 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때의 실망과 분노가 핏줄을 따라 대대로 전해진 게 아니었을까.
* 진국사 보정 스님이 관공 혼령에게 타이른 말 -- "지난 날은 이제가 아니니 일절 말하지 말 것이며, 뒷 일은 앞에 이미 그 까닭이 있었음이니 서로 따지지 않는게 옳습니다."
* <장비>
장비는 원래 燕(연) 땅에 자리 잡고 살아온 명문의 후예였으나 다섯살 때 집안이 당고의 화에 연루돼 풍비박산이 나고, 어린 그는 집안에서 부리던 늙은 가복의 구함을 받아 탁현의 저잣거리에 숨어 살게 되었다. 충직한 가복은 돼지를 잡고 술을 팔기도 해 장비를 길렀는데 장비가 열다섯도 되기 전에 죽어 그때부터 장비는 저잣거리의 불량배로 자랐다. 그러나 그의 몸을 흐르는 명문의 피 탓인지 성미가 호탕하여 호걸 사귀기를 좋아하고,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한 자루 사모를 열심히 익혀 여느 저잣거리의 불량배와는 달랐다.
* <조조>
황보숭이 황건적 토벌을 위해 패국 조조를 추천. 조조는 기도위(도성을 지키는 오교(지금의 수도경비사령부) 가운데 기마대를 지휘하는 장수 였다.
조조 왈 "차라리 내가 세상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 (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我負). 남을 배반할지언정 배반당하지는 않으리라는 차가운 결의였다.
--조조가 유비에게 한 말. -- 용이란 크고 작아지기를 마음대로 하며(能小能大), 위로 솟고 아래로 숨기를 또한 마음대로 하오(能昇能隱). 크게 되면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며, 작게되면 겨자씨만 해지고 형태를 감추어버리기도 할 수 있는 것이오. 솟은즉 드넓은 우주 사이를 날고, 숨은즉 파도 안에 엎드려 없는 듯이 보일 수도 있소이다. 이제 봄이 한창이니 용이 때를 타 변화를 일으킬 때요. 마치 사람이 때를 얻어 천하를 종횡함과 같으니, 용이란 물건은 영웅에 비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외다. 원소는 겉모양이 번듯하나 담이 작고, 일을 꾸미기는 좋아해도 맺고 끊는 힘이 없소/ 큰 일을 하려 하면서도 지나치게 제 몸을 사리고, 엉뚱하게도 작은 이익에는 목숨까지 잊고 덤비니 어찌 영웅이라 할 수 있겠소? 무릇 영웅이란, 가슴에는 큰 뜻을 품고 배에는 좋은 지모가 가득한 사람으로 우주의 기운을 머금고 하늘과 땅의 뜻을 토해내는 자요.
-- 조조의 의 -- 세상이 어지럽고 형세가 불안정할 때는 남의 불의를 부추기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즉 적에게는 얼마든지 배반을 권장하고 또 그렇게 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자는 격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이 안정되면 더욱 필요한 것은 법과 윤리가 된다. 조조가 묘택을 죽인 것은 더 이상 백성들의 불의를 권장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와 안정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도 있다.
-- 조조의 빈그릇 -- 어느날 조조로부터 사자가 와 꾸러미 하나를 전했다. 풀어보니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는데, 조조가 친필로 뚜껑을 봉한 것이었다. 순욱은 불길한 느낌을 누르며 봉함을 뜯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그릇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순욱은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내 조조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이제 그대가 먹을 것은 없다. 내가 그대에게 보낼 것은 이 빈 그릇과 같은 옛정의 껍질 뿐이다.>
<조조와 유비>
조조도 유비도 일생동안 수없이 많은 지모를 쓰고 사람을 속였다. 그런데도 조조는 지모와 속임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반면, 유비는 성실과 정직의 화신처럼 전해졌다. 그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대략 두 가지로 보여진다. 그 하나는 조조가 자신의 지모를 자랑하는 반면 유비는 언제나 그것을 숨겼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조가 일생을 통해 공격적인 입장에 있었던 반면 유비는 항상 수비적인 입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재주가 드러나면 시기를 받고, 강자는 약자보다 동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그 시대의 감정이 그대로 후세에 전해진 것이리라.
<조조와 공명>
조조가 스물 일곱살 때 태어난 제갈공명은 조조와 한 세대의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제갈공명이 세상에 뜻을 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조조가 이미 천하의 제일인자로서 마지막으로 원소의 잔당들을 토벌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말해 조조는 벌써 천하 제패의 기반을 거의 닦아놓았을 뿐 아니라 기라성 같은 재사와 무장의 장막에 둘러 싸여 있었다. 젊은 제갈공명이 그를 찾아가 본댔자 마음대로 뜻을 펼치기에는 늦은 셈이었다.
<손권과 공명>
손권도 제갈공명이 선뜻 찾아 나설 사람은 못되었다. 기업이 오래되기는 조조에 못지 않았고, 다른 뜻을 품을 때 찬역이 되기로는 조조와 마찬가지였다. 규모가 작고 천자를 끼고 있지 않다는 것뿐 대의명분이나 한실 부흥의 이상을 위해서는 조조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는 손권이었다. 그밖에 또 공명의 마음이 강동으로 쏠림을 막는 것은 형 제갈근이 이미 그곳에 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형과 재주를 겨루거나 공을 다투고 싶지 않은 게 공명의 솔직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유비와 공명>
공명이 그 무렵 들어 눈여겨 보고 있는 것은 신야로 온 유비였다. 그는 한실의 종친으로서 한실 부흥의 이상을 걸어보기에는 누구보다 알맞았다. 때로 의심쩍을 때가 없지 않았으나 그의 어질고 의로움은 무슨 신화처럼 백성들 사이에 번지고 있었으며, 한때 세상을 주름잡았던 영웅들이 차례로 멸망해 가는 동안에도 오히려 세력과 경륜을 길러가며 살아남은 그의 유연한 처세도 어떤 기대로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더군다나 그는 충실한 손발은 가지고 있어도 쓸 만한 머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었다. 만약 그의 머리가 되어 새로운 기업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자신의 뜻을 펴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마당이 될 것 같았다. 아직 그의 세력이 보잘 것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명이 유비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인 것은 그런저런 헤아림에서였다.
<방통>
짙은 눈썹에 들창코요, 시커먼 얼굴에 짧은 수염을 달고 있어 괴이쩍었다. 저의 재주와 학문은 주유와는 크게 다릅니다. 원래 서로 다른 것을 어찌 견주어볼 수 있겠습니까?
* 유언비어 *
세간에 떠도는 근거없는 소문을 유언비어라고 한다. 그런 유언비어가 떠돌게 되는 원인은 두 가지로, 하나는 정치적 폭력에 의해 언로(言路)가 막혀 있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성을 공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집단 또는 개인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공격하는 비열한 수단으로 쓰는 경우이다. 하지만 그 어느 편도 진실보다는 퍼뜨린 자 또는 조작한 자의 주관과 목적에 더 충실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슬기로운 사람은 유언비어를 들어도 전하지 않는다. 진실은 확인 할 길이 없고, 꾸며댄 자나 퍼뜨린 자의 주관과 목적만 되풀이 강조되는 그런 종류의 뜬소문을 다시 전하는 것은, 잘해야 용기 없는 정의의 주관에 뇌동하는 것이 되고 자칫하면 악당을 쓰러뜨리기 위한 다른 악당의 계교를 도와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민중들에게는 생각 밖으로 위력적인 것이 또한 이 유언비어이다. 퍼져 나가는 동안의 알 수 없는 자가증폭의 속성은 때로 선동력으로까지 커져 어줍잖은 이 기폭제로도 강력한 권력 집단의 몰락을 가져 올 수 있는 까닭이다.
* 정치적 권력의 정당성은 종종 그 획득한 과정보다 획득한 뒤의 처리에서 결정되는 수가 있다. 부당하게 권력을 탈취했더라도 그 뒤의 업적이 뛰어난 경우와 정당하게 권력을 승계했더라도 그 뒤의 통치가 실패로 끝난 경우 가운데서 역사가 편드는 것은 대개 앞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 조조가 능력만 있으면 출신이나 경력이나 세상의 평판 따위는 무시하고 사람을 쓴 것에 비해, 원소는 그렇지가 못했다. 원소는 언제나 인간 그 자체보다도 가문이나 직위, 경력 따위 등 그에게 부가된 사회나 제도의 인정을 중시했다. 평화로운 시대는 종종 굳은 사회, 멈추어진 사회와 같은 뜻이어서 기존의 지식과 공식으로도 그럭저럭 풀어갈 수 있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회, 변화하는 사회와 일치하기도 하는 난세에는 그 굳어버린 지식과 시효가 지나가버린 공식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 자기 생각에 젖어 남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하는 게 또한 재주 있고 학식 많은 이들의 단점이다.
* 공포정치 - 동탁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즐겨 사용한 수단은 공포였고, 그의 통치는 이른바 공포정치인 셈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을 위압하고 적대 세력을 꺾는데에 그 어떤 수단보다 빠르고 확실한 효과가 있는 것에 못지 않게 계속되기 어렵고 결말이 위험한 것이 또한 공포정치이다. 공포정치가 계속 되기 어렵다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 가진 마비란 특성 때문이다. 다른 감각과 마찬가지로 공포감도 거듭되면 마비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공포를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쪽은 거듭될 수록 보다 강력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걸 개발해야 하는데, 그것은 다만 보다 잔혹해지고 야만스러워지는 길 뿐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이미 공포감이 마비된 이들에게는 효과도 없이 이용하는 쪽만 광란적인 가학 심리로 몰아넣어, 적대 세력에겐 한층 설득력 있는 대의 명분을 무기로 주는 결과 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 공포정치의 한계가 있다.
* 계략 - 계략이라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읽어 거기에 대응해 펼치는 꾀요, 계략에 밝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밝게 읽을 줄 안다는 뜻도 된다.
* 비록 정의일지라도 지나치게 독선에 흐르면 화가 따른다. // 동탁을 연환계로 제거한 왕윤이 독선으로 채옹을 죽이고 동탁의 부하 장수들의 항복을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목이 잘리게 된다.
* <원술> - 원술의 실수란 비슷한 시기에 너무도 많은 적을 만든 일이었다. 난세에 있어서는 친함과 멀어짐이며, 모이고 흩어짐이 한가지로 무상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원칙은 있다. 마지막 둘이 남을 때까지는 적보다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것과, 강한 적 하나보다는 약한 적 여럿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홍문의 연회>
홍(鴻)문(門)의 연회란, 초한이 천하를 다툴 때 세력이 큰 항우가 보다 약한 유방을 죽이기 위해 홍문이란 곳에서 연 잔치이다. 그때 항우는 처음 모사인 범증의 말대로 유방을 죽이려고 했으나 막상 만나서 그의 말을 듣고는 죽일 마음이 없어져 버렸다. 그걸 안타까이 여긴 범증이 칼춤을 핑계로 유방을 죽이려고 들여보낸 초군의 장수가 바로 항장이요, 유방을 구하러 뛰어든 게 항백이었다.
<구석(九錫)>
구석이란 공이 있는 제후에게 내리는 특전이다. 첫째. 타고 다니는 말과 수레 둘째. 의복 셋째. 악현(그 훌륭한 점은 남에게 본보기가 되고 안으로는 어짊(仁)을 품게 하고자 사용할 수 있는 가무와 음곡을 내려 백성들을 가르치게 하는 것) 넷째. 거처하는 집 - 붉은 대문과 나무 기둥에 붉은 칠을 한 집을 내려 다른 신하들과의 구별을 뚜렷이 한 것으로 보통 주호(朱戶)라고 불렀다. 다섯째. 행동제한의 완화로 예를 지키면서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칼을 차고 전상에 나아갈 수 있는 특전을 주었는데 보통 그것을 납폐(納陛)라 했다. 여섯째는 호분이라 하여 궁중을 지키는 군사를 뽑아 사사로이 호위로 쓸 수 있는 특전이다. 일곱째, 궁시(弓矢)라 하여 안으로는 어질고 밖으로는 치우치지 말라는 뜻으로 붉은 활과 붉은 살, 검은 활과 검은 살을 내리는데 또한 마음대로 역적을 칠 수 있는 권한을 나타내기도 했다. 여덟째, 부월(斧鉞)로 왕의 의장에 쓰는 금도끼와 은도끼를 내리는데, 이는 또한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도 죄 되지 않는 특전이었다. 아홉째, 제사를 지낼 때의 특전으로 그 부모를 제사하는데 신에게 올리는 향기로운 술과 종묘에서 쓰는 옥으로 깎은 제기를 쓸 수 있게 하였다.
<계륵>
유비가 있는 한중땅을 정벌하고자 군사를 일으킨 조조. 그러나 공명의 지략에 빠져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며 힘든 처지에 놓인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마초가 두려웠고, 군사를 거두어 물러가자니 촉병들이 비웃을까 걱정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한숨만 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끼니 때가 되었는데 마침 상 위에 닭국이 올랐다. 무심코 닭국을 먹던 조조의 수저에 문득 닭갈비 조각이 건져 졌다. 그걸 보자 조조는 속으로 씁쓸한 웃음이 일었다. 닭갈비는 살이 없어 먹기에 성가시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있었다. 한중이 꼭 그와 같았다. 기름지고 드넓은 중원이나 물자가 풍부한 강남에 비해 대단할 것 없는 땅 조각이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내주기에는 아까웠다. 그걸 위해 이토록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자못 고약스러웠다. 조조가 그런 저런 생각으로 잠시 수저를 멈추고 어두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침 하후돈이 들어와 물었다. "전하, 오늘 밤에 쓸 군호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계륵이라고 하게. 계륵." 조조가 무심코 그렇게 대답했다. 방금 거기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한 뒤라 저절로 그리되고 말았다.
<3인의 죽음>
어떤 이는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세 번이나 책을 던졌다가 다시 집어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바로 관공이 죽었을 때요, 두 번째는 유현덕이 죽었을 때이며, 마지막은 제갈공명이 죽었을 때라고 한다.
<관공의 죽음>
형주에 있던 관운장이 오나라 손권의 군사 여몽의 계책과 지나친 자만감에 빠져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 아들 관평과 함께 목이 잘리게 된다.
<조조의 죽음>
조조는 평시 두통이 심했다. 관운장의 장례를 치른 뒤로 눈만 감으면 관공의 모습이 나타나는 게 그랬다. 두통을 치료하고자 화타를 데려 왔으나, 날카로운 도끼로 머리를 쪼개 그 안에 있는 바람기를 걷어내야 한다는 말에 암살하려는 의도로 알고 화타를 옥에 가두어 죽인다. 조조는 화타를 죽인 뒤로 병세가 더 나빠졌다. 결국 맏아들 조비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유언을 한 다음 죽는다. "모든 당부가 끝난 뒤 조조는 한소리 긴 탄식과 함께 눈물을 주르르 쏟더니 문득 숨이 끊어졌다. 그의 나이 예순 여섯이었다.
<장비의 죽음>
장비는 관공이 동오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하루 종일 울며 지내고 있었다. 여러 장수들이 술로 그 분노와 슬픔을 달래보게 했으나 술이 취할 수록 장비의 분노와 슬픔은 더 커질 뿐이었다. 그 바람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장졸들을 마구 채찍질해대니, 채찍에 맞아 죽은 장졸이 이미 여럿이었다. 장비는 유비를 설득해 오를 쳐 관공의 원수를 갚으려 한다. 관공의 원수 갚음을 앞세우기 위해 모든 군사에게 입힐 흰 갑옷과 흰 군복에 흰 깃발을 마련하되 사흘 안으로 마련해 올리게 했다. 그런데 갑옷과 깃발을 만들어 댈 일을 맡은 범강과 장달은 말(末)장(將)이었다. 이들은 사흘안에 수만군사가 쓸 깃발과 갑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한을 넉넉히 달라고 장비에게 요청했으나, 장비는 이들을 나무에 매달아 등허리에 쉰 대씩이나 채찍질을 했다. 기한을 늘리려 갔다가 죽도록 매질만 당하고 돌아온 범강과 장달은 "저가 우리를 죽이는 것보다는 우리가 저를 죽이는 편이 나을 것 같네"라고 의논을 한다. 술을 마시고 몹시 취해 자는 장비를 범강과 장달은 칼을 뽑아 한꺼번에 장비를 찌르니 장비는 한소리 큰 비명과 함께 숨이 끊어지니 그때 그의 나이 쉰다섯이었다. 그날 밤 장비를 죽인 범강과 장달은 곧 장비의 목을 베어 따르는 수십 기와 더불어 동오로 달아나버렸다.
<유비의 죽음>
한제가 조비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유비는 하루 종일 통곡한다. 관공의 죽음, 미방과 부사인의 배신, 유봉의 죽음 따위로 그러지 않아도 성치 못하던 유비의 몸과 마음은 그 일로 다시 병이 들었다. 관공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동오를 치러 갔던 유비는 동오의 육손에게 대패한 뒤 백제성으로 쫓겨나 겨우 성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백제성에서 병이 든 유비는 늙은 탓인지 여러가지 약을 써도 병은 낫지 않고 차차 깊어갈 뿐이었다. 장무 삼년 여름, 유비는 마침내 병이 온몸에 퍼져 일어나기 어려움을 알았다. 먼저 죽은 관, 장 두 아우를 생각하고 슬피 우니 그 때문에 병은 더욱 심해졌다. 공명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마침내 숨이 지니 유비의 나이 예순셋이었다.
<공명의 죽음>
공명은 촉의 힘을 길러 위를 치러 나간다. 6번째 출사에서 위는 사마의를 대장군으로 하여 촉을 상대하러 나온다. 그런데 공명은 촉의 승상이 되어 작은 일까지 몸소 맡아 하루종일 땀을 흘리며 일을 한다. 새벽에 일어나고 밤이 늦어야 잠자리에 들며, 스무 대 이상 매를 때릴 일은 모두 몸소 맡아 하고, 먹는것은 하루 몇 홉도 되지 않았다. 이렇듯 먹기는 적게 먹고 하는 일은 많으니 건강이 나빠졌다. 공명은 전부터 몸과 마음이 성치 못함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애써 성한 채 버텨 왔는데, 사마의가 한 말을 듣자 그날부터 겉으로까지 성치 못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마의를 잡을 묘책을 구상하던 중 동오가 위의 한 귀퉁이를 물고 늘어져 위의 힘 일부를 오와 상대하는데 쓰게 하고 촉은 위를 치려고 공명은 계획을 세웠으나 오의 계책이 위에 들켜 아무런 공도 내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소식이 온다. 위가 온 힘을 기울여 맞서 오면 중원을 회복한다는 건 가망 없는 꿈에 지나지 않았다. 상심한 공명은 긴 탄식을 거듭하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반나절이나 있다 깨어난 공명이 "내 마음이 이렇게 어지러운 걸 보니 옛날 병이 다시 도진 모양이로구나. 이제 더 살기 어려울 것 같아 실로 걱정이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밤이 되자 공명은 부축을 받으며 장막을 나가 가만히 천문을 살폈다. 강유의 권유대로 기양지법(하늘에 빌어 재앙이나 질병 따위를 물리치는 방법)을 행하기로 한다. "나는 장막 안에서 북두칠성께 목숨을 빌어 보겠다. 만약 이레동안 으뜸되는 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느다면 내 목숨은 열두 해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등잔불이 꺼지면 나는 틀림없이 곧 죽고 말 것이니 쓸데 없는 사람은 함부로 장막 안에 들이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한다. 때는 마침 팔월 한가위였다. 공명은 벌써 엿새째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아직도 주등이 켜져 있는 걸 보자 공명은 마음 속으로 매우 기뻤다. 그런데 한 밤중의 일이었다. 진채 밖에서 함성이 일어 강유가 막 사람을 보내 알아보려 하는데 위연이 나는 듯 달려와 공명의 장막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위병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소리치며 공명을 찾아 허둥대던 위연이 잘못 발을 옮겨 그때까지 지켜온 주등을 엎어 꺼버렸다. 주등이 꺼짐으로써 공명이 받은 충격은 컸다. 그 자리에서 몇차례 피를 토하더니 침상에 쓰러져 눕게 된다. 공명의 나이 쉰넷이었다.
<공명의 출사표>
선제께서는 창업의 뜻을 반도 이루시기 전에 붕어하시고,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거기다가 우리 익주는 싸움으로 피폐해 있으니 이는 실로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걸린 위급한 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러하되 곁에서 폐하를 모시는 신하는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된 무사는 밖에서 스스로의 몸을 잊음은, 모두가 선제의 남다른 지우를 추모하여 폐하께 이를 보답하려 함인 줄 압니다. // 마땅히 폐하의 들으심을 넓게 여시어, 선제께서 끼친 덕을 더욱 빛나게 하시며, 뜻있는 선비들의 의기를 더욱 넓히고 키우셔야 할 것입니다. // 결코 스스로 덕이 엷고 재주가 모자란다고 함부로 단정하셔서는 아니 되며, 옳지 않은 비유로 의를 잃으심으로써 충성된 간언이 들어오는 길을 막으셔서도 아니 됩니다. // 폐하께서 거처하시는 궁중과 관원들이 정사를 보는 조정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벼슬을 올리는 일과 벌을 내리는 일은 그 착함과 악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궁중 다르고 조정 달라서는 아니 됩니다. // 간사한 죄를 범한 자나 충성되고 착한 일을 한 자는 마땅히 그 일을 맡은 관원에게 넘겨 그 형벌과 상을 결정하게 함으로써 폐하의 공평하고 밝은 다스림을 세상에 뚜렷하게 내비치도록 하십시오. // 사사로이 한쪽으로 치우쳐 안(궁)과 밖(조정)의 법이 서로 달라지게 해서는 아니됩니다.
* 싸움의 원칙 - 군사로 맞설 때는 다섯가지 큰 원칙이 있다. 싸울 수 있을 때는 마땅히 싸워야 하고 <能戰當戰>, 싸울 수 없을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하고 (不能戰當守), 지킬 수 없을 때는 마땅히 달아나야 하고 (不能守當走), 달아날 수 없을 때는 마땅히 항복해야 하고 (不能走當降), 항복 할 수 없을 때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不能降當死耳)는 것이 그 다섯이다.
<삼국지 마무리>
그리하여 솥발 같이 갈라섰던 세 나라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 뒤 촉주 유선은 진 태강 칠년(287년)에 죽었고, 위주 조환은 태강 원년(280년)에 죽었으며, 오주 손호는 태강 사년(283년)에 죽었는데 모두가 제 명대로 산 선종(善終)이었다.
< 결사(訣辭) >
하늘 아래의 큰 흐름은 나뉘면 다시 아우러지게 되어 있다던가. // 이로써 이웃나라 솥발처럼 나뉘어 서고, // 꽃처럼 빼어난 이들 구름같이 일어 // 다투며 치닫던 온 해(百年)는 다했다. // 착한 이 모진 이 가릴 것 없이 모두 죽고, // 힘센 이 여린 이며 고운 이 미운 이 또한 모두 죽어, // 이제는 한결같이 끝 모를 때의 흐름 저쪽으로 사라졌다. // 부질없을진저, 그들의 빛나는 꿈 큰 뜻 매운 얼을 추켜세움이여, // 이미 그 몸이 스러진 뒤에 낯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 떠도는 이름이 있다 한들 그 얼마이겠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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