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구정. 아침 6시 30분경 아내가 부스스한 얼굴에 외출복을 입고 잘 잤느냐며 침대맡에 선다. 그런데 느낌이 싸하다. 안색이 이상하다고 말하니, 부정맥이 왔다며, 사실 어제 저녁 부정맥이 있어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심장초음파 결과를 보니 상급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단다. 아침에 동네에서 한번 더 진료를 받고 심각하면 아산병원 응급실로 가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이라도 응급실로 가는 것이 좋은지 물으니, 아내가 망설인다. 이건 지금 당장 가자는 소리다. 바로 세수하고 나와 아산병원 응급실로 달린다.
7시 56분에 집에서 출발해, 8시 21분에 응급실에 접수. 4구역 3번 베드 지정을 받았다. 다행인지 구정 아침이어선지 응급실에 대기환자가 없다. 작년 가을에 왔을 때는 저녁 9시경 응급실에 도착하고 보니 대기환자가 줄을 서 있어 12시가 되어서야 진료를 겨우 받았고, 각종 검사를 마치니 새벽 4시. 시장보다 더 소란스럽고 병실 침대를 배정받지도 못하고 응급실 복도 휠체어에 앉아 진료를 기다렸던 것을 상기하면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자다 응급 호출에 불려 나온 듯한 응급실 당직 의사의 진료를 받고, X-ray, CT 촬영, 피검사를 하고 2시간을 기다려 결과를 받았다.
심장의 문제라기 보다는 <역류성식도염>에서 비롯한 것 같다는 소견. 심장의 문제라면 식은 땀이 나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며 팔이나 등 뒤로 뻗치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응급상황이니 바로 병원에 와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아내에게 이런 증상은 없었고 단지 본인이 느끼기에 부정맥이 온 것 같고 느낌이 이상했다는 것. 전에도 이런 부정맥 느낌이 오면 친구가 왔구나 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잘 다스리면 회복된다고 했건만, 아내의 건강염려증이 발동해 응급실로 오게 만들었다. 설령 부정맥이 오더라도 빈맥- 매우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경우가 위험하니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혈압은 97, 맥박은 50을 오르내린다. 검사 결과는 '심장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오전 10시 40분이 되자, 이제 퇴원해도 되는데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도 부정맥이 나타날 수 있으니, 식도염을 진정시킬 주사제를 놔 주겠다고 한다. 10여분 주사를 맞았을까? 갑자기 아내가 주사를 뽑아 달라고 한다. 간호사에게 주사기 제거해 달라고 말하고 오니 아내가 온 몸을 비튼다. 곧 주사제 밸브를 잠그고, 간호사를 부른다. 팔과 다리를 꼬며 몸이 이상하다고 숨을 헐떡인다. 큰 일이 나는 줄 알았다. 곧 간호사가 해독제를 처방 받아 주사를 놓자 몸을 비비 꼬던 아내가 진정되는지 잠이 든다. 아마도 강력한 진통제가 아니었나 싶다.
잠 든 아내를 지켜보며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잠시 외면하고 있었던 아내의 건강상태를 각성시켜 주는 일이었지 않을까 싶다. 심장 이상으로 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건만 잠시 마음을 놓고 있었던 나에 대한 채찍질이었지 않았나 싶다. 하남으로 이사 오게 된 것도 아산병원 응급실에 30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에 선택했었다는 점을 잊으려 했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2023년 봄부터 아내가 경제 강의를 하러 다닌다며 스트레스 받고 몸이 지쳐서 나타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양평에 가 있어 아내가 홀로 밥을 먹게 되니 식사 때 부쩍 빨리 식사하는 습관과 식사 후 졸다 구부려 누우니 역류성 식도염 증세가 악화 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서예 공부를 하러 다닌다며 커피를 마시고 보이차를 많이 마신 탓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응급실 닥터 말이 카페인 함량이 높은 약을 처방받은 기록이 있는데 복용했느냐고 묻는다. 며칠 전 감기 의심되어 병원에서 처방받아 약을 한번 먹었다고 아내가 말한다. 그리고 보이차는 카페인이 없는 줄 알고 보이차를 자주 많이 마셨다는 아내.... 카페인이 함유되지 않은 차가 어디 있을까? 커피에만 있는 줄 알았다는 아내...
아무튼 2024년 구정 첫 날 아침부터 응급실로 달려가고 진이 빠져 집으로 왔다. 구정 아침에 아버님께 올리는 추모행사는 건너뛰었다.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지금까지 어떤 경우에도 건너 뛴 적이 없었는데... 제사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제사를 올리다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나면서 추모식으로 간소화 하긴 했으나 구정과 추석 당일 아침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버님 추모식이었건만 올해는 생략하게 되었다. 응급실에 가자는 아내에게 추모식을 하고 가자고 할 수는 없는 일. 비상 상황이었음을 아버님도 아시겠지하고 스스로 면죄부를 준다.
앞으로 아내의 건강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 건강한 정상인과 같아지려는 아내의 어리석음을 바로 잡아 주어야겠다. 아내가 아파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도, 나를 슬프게 하고 괴롭게 만들어도, 내 속을 뒤집어 놓아도, 화가 나도, 이해할 수 없어도, ... 아내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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