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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길 없는 길

* 개정판을 내면서 -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작품을 써왔지만 사람들로부터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무엇입니까?하는 질문을 받을 때면 으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습니까?'하고 일반적인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주저없이 <길 없는 길>을 꼽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길 없는 길>은 내가 쓴 작품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몇 작품 중의 하나이다.   (중략)   경허의 선시 중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무사유성사(無事猶成事)'이란 구절에 한 방망이 두들겨 맞고 나는 그 무렵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경허가 보임 생활을 하였던 모든 사찰들을 구름처럼, 물처럼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내 서재의 벽에는 수덕사의 방장이신 원담스님이 친필로 쓴 경허의 게송 하나가 걸려 있다.  <세속과 청산 그 어디가 옳은가 / 봄볕 있는 곳에 꽃 피지 않은 곳이 없구나.> 경허의 이 말이야말로 요즘 나의 구경(究竟)이다. 내가 찾아 갈 곳은 봄볕이 비추는 곳이지, 세속이든 청산이든 가릴 필요가 없는 것. '경허여! 나와 그대와는 이미 전생에서부터 둘이 아닌 하나이니, 이것이 둘 없는 소식이냐 아니면 둘인 소식이냐. 4,5백 가지 화류의 거리에 2,3천 곳곳마다 피리 불고, 거문고 뜯는 흥겨운 누각이니, 경허여, 그대와 나야말로 둘이 없는 집, 즉 무이당(無二堂)이로구나.'

*   내가 경허스님의 이름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한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다니던 학교에서 잠시 휴직을 강요 받고 있었다. (중략) 교수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교단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매일 같이 출근하던 학교에 발길을 끊어버리자 견딜 수 없는 불안과 고독이 찾아왔다. 이것으로 영원히 학교와는 인연이 없어져 영영 캠퍼스로 되돌아가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그 엄청나게 남아 돌아가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막연함, 그리고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버림받았다는 쓸쓸함으로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혔던 것은 젊고 발랄한 학생들을 만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중략)  처음 서너달은 잠조차 이룰 수 없어 어떤 날은 불면의 고통으로 생전 처음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하기도 하였고, 아내를 따라 수퍼마켓에 가서 찬거리 사는 것을, 손수레를 끌면서 도와주기도 했었다. 이러한 불안정한 심리상태는 반년 정도 지나자 차츰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그 해의 가을.  나는 우연히 경허(鏡虛)라는 이름과 처음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    스님은 아주 평범하고 쉬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말하지 아니하고 매번 생각하고 체로 거르듯 뜸을 들였다 말을 하고 있었다. 

*    잠들어 있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깨우고, 잠들어 있음의 어리석음을 깨우고, 종을 울려 중생의 번뇌를 깨뜨리고, 캄캄한 미망을 깨뜨리고, 북을 울려 짐승들의 어리석음도 깨우치며, 목어를 두드려 물 속의 고기들을 일깨우며, 운판(雲版)을 두드려 하늘을 나는 새들의 괴로움과 고통을 어루만지며 일깨우는 예불의 긴 의식을 나는 꿈 속에서 듣고 새겼다.

*    저 네 분은 이 덕숭산이 낳은 성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제자들이 다 가운데에 앉아 계신 경허스님에게서부터 나온 분들이지요. 만공스님이나 혜월스님, 수월스님 모두가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처럼 하나의 스승에서 나온 法의 제자들입니다. 불가에서는 흔히 이런 말들을 하지요. 경허스님에게서 나온 만공스님은 우리나라의 중간 호서지방에 줄곧 계셨고, 수월스님은 백두산 근처의 산간 지방에서 돌아가셨고, 혜월스님은 남쪽 부산지방에서 돌아가셨으므로, '북에는 수월, 남에는 혜월, 가운데에는 월면(月面; 만공의 법명), 즉 경허 스님에게서 나온 세 분의 달들이 우리 나라의 온 천하, 동서남북을 환히 밝게 비추었도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