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주인공 <철가면>은 루이 14세 시절 바스티유감옥에 수감되었다고 알려진, 프랑스 역사와 전설에 등장하는 유명한 정치범이다. 역사기록에는 그 검정색 가면이 벨벳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써 있으나,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살이 덧붙여져 철가면으로 굳어졌다. 그가 몇차례 감옥을 옮겨 다니는동안 '배니뉴 도베르뉴 드 생 마르'라는 사람이 책임자로 늘 따라다녔다. 20여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동안 한 사람이 관리를 도맡았던 것으로 보아 아주 중요한 죄수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과연 그가 누구이며 무슨 죄목으로 수감되었는지 수많은 전설이 생겨났다. 기록에 따르면 그 죄수의 이름은 '마르시올리'이며 나이는 45세 가량이다. 1681년 이전에 피에몬테의 피뉴롤감옥에 수감되었으며, 그 뒤 여러 감옥을 전전하다 1698년 9월 18일 바스티유 감옥에 옮겨져 결국 1703년 11월 19일 숨졌다. 그의 유해는 그 다음날 생폴교구 묘지에 매장되었다.
머리글 - 1703년 11월 19일 (월요일) - 생 마르 감옥장이 성 마르그리트 섬에서 데려와 오랫동안 감시해 온 죄수가 죽었다. 이 죄수는 신원불명으로 늘 검은 벨벳가면을 쓰고 지냈으며, 어제 미사에 참석한 뒤 중태에 빠졌다가 오늘 밤 10시쯤 별다른 고통없이 숨을 거두었다. 어젯밤 감옥의 고해신부인 지로 신부가 죄수의 참회를 들었다. 죽음의 순간이 너무 갑작스레 찾아오는 바람에 죄수는 병자성사를 받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죽기 직전에 고해신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11월 20일 (화요일) - 오랜 기간 구치되어 있던 신원불명의 죄수는 오후 4시 교구 내 성 폴 성당 묘지에 매장되었다. 사망증명서에 어떤 이름이 기재되었는지 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로자르주 부관과 외과의사 레이유씨가 증명서에 서명했다. 그 뒤 내가 들은 이야기는 사망증명서에 죄수 이름이 마르키엘이라고 쓰여 있었으며, 매장 비용은 40리브르였다는 것이다. 수수께끼의 죄수가 40리브르의 비용으로 성 폴 성당 묘지에 묻힌 지 17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제해결의 열쇠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150년도 전부터 많은 역사가가 공허한 노력을 거듭했다. 볼테르는 이 사건을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아닐지언정 세상에 널리 퍼뜨린 최초의 인물이다. 날카롭고 명석한 정신과 화려한 상상력을 타고 났지만 결코 박학하지는 않았던 볼테르는 <철가면>의 가슴 아픈 실화에 근거해 일종의 전설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1790년 무렵에 유명한 샹포르가 퍼뜨린 가설에 따르면, 안 도트리슈는 루이 14세를 쌍둥이로 낳았는데 뒷날 이들이 프랑스 국왕 자리를 놓고 다툴 것을 우려해, 안됐지만 왕의 동생을 감옥에 가두고 평생 가면을 쓰고 살게 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나에게도 충분히 고통을 주셨어요. 그래서 고통받는 사람을 놀릴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죠."
"내 사랑이 얼마나 깊으냐구요? 난 밤마다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해요. 언젠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기쁨을 제게 주십시오! 그 사람의 피 한방울을 위해서라면 내 온 몸의 피를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내 깊은 사랑이 의심스러우십니까? 전 그 사람의 뒤를 따르기 위해 부모도, 신분도, 조국도 버렸습니다. 그 사람과 나란히 말을 달리고, 무인으로서 모반자로서 힘든 삶을 살기 위해서 행복한 삶을 내던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마음으로 피를 흘린 적이 있다면, 내 마음을 갈가리 찢는 말을 어쩜 그렇게 태연히 하죠?"
* 라 보아젱 - 17세기 프랑스의 기묘한 여인의 결혼 전 이름은 카트린 데제로. 보석상인 앙투안 몽보아젱과 결혼하여, 남편 성을 따라서 라 보아젱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9살때부터 강령술, 점, 비약 조합 등 야릇한 비술을 행했다. 피렌체 태생의 왕비를 따라 궁정에 온 이탈리아인들이 이러한 비술을 발루아 왕조시대의 프랑스에 까지 전하고 널리 퍼뜨렸다. 라 보아젱의 고객층은 대 부르주아 계급에까지 확대되어 있었다. 수와송부인이 살았던 시대에 마녀는 후한 대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암묵적으로 공인되었다. 그 이유중 첫 번째는 가장 교양있는 사람중에도 아직 요술을 믿는 사람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이러한 마법이나 별점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경찰당국에 특별한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점술의 비법은 자기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분명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델포이 신탁이래 신의 계시란 언제나 불명료한 것뿐이었다.
* 바스티유 - 바스티유는 외관상 방어용 성이었다. 샤를 5세 시대에 파리, 특히 당시 왕궁이었던 성 폴 궁전을 지키기 위해 위그 오브리오가 지은 건물이었다. 그러나 1651년 프롱드의 반란때 반란군 병사의 퇴각을 돕기 위해 몽팡시에 공주가 국왕의 군대를 향해 바스티유의 대포를 발포시킨 이래, 이 낡은 성체는 죄수를 가두는 곳으로만 쓰이게 되었다.
* 그 당시 유럽에서 루이 14세 궁정의 위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생각 해 봐야 할 것이다. 뒷날 프랑스인이 어쩔 수 없이 왕으로 승격시켜 주거나 그런 승격을 묵인해야 했던 독일 선거후들도, 그 시대에는 군주의 귀감으로 추앙받던 루이왕을 무작정 모방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루이왕의 사치를 흉내 내다가 파산 할 지경에 이르렀다. 보잘것 없는 변방 귀족들도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한 정원을 만들고, 여기 저기 금이 간 낡은 성에서 마를리 성의 대연회 비슷한 것을 베풀었다. 라퐁텐의 시를 읽고 <황소와 개구리>라는 우화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대신, 이 허영에 들뜬 독일인들은 태양왕을 정신없이 흉내 내면서 20년치 수입을 단번에 써 버리고 민중을 착취했다.
* 마무리 - "혁혁한 무공을 세웠던 그 대담무쌍한 모리스 데자르모아스의 변해 버린 모습이 눈 앞에 있었다. 바스티유 감옥은 용감하고 긍지 높은 무인 귀족을 삼켜 버리더니, 이제 완전히 과거의 모습을 잃어버린 지치고 힘 없는 노인을 뱉어낸 것이다. 그러나 방다는 그가 모리스임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쓰러져 버렸다. 방다는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은 얼음처럼 차가운 모리스의 입술에 겹쳐져 있었다. 30년동안 헤어져 있었던 두 연인이 마침내 관 속에서 마지막 입맞춤을 했던 것이다. ~~중략~~ 로자르주가 신호하자 인부들은 얼른 알아듣고 순식간에 관 뚜껑을 덮더니 관을 무덤 구덩이 속으로 내려보냈다. 이어서 삽으로 퍼 넣은 흙이 관에 부딪히며 저 세상의 메아리 같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로자르주는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서 상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 줘라!" 알리는 기꺼이 그 명령에 복종했다. 두번 다시 바스티유에 발을 들여 놓지 않겠다고 이미 굳게 결심했던 것이다. 알리는 방다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모리스의 무덤을 보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으므로, 잠든 아이를 안듯이 방다를 안아 들고 묘지를 떠났다. 인부들은 무척 빠르게 일하고 있었다. 모리스 데자르모아스의 시체는 벌써 1m쯤 흙으로 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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