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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 머리말 - "내 아버지의 성은 피립이고 내 이름은 필립인데, 유아시절 내 혀는 둘 다 핍이라고 발음했지. 그 보다 더 길거나 더 분명하게 발음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를 그냥 핍이라고 불렀고, 결국은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아버지의 성이 피립이라고 한건 아버지의 묘비와 대장장이와 결혼한 누나 조 가저리부인의 말에 근거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제 모습은 물론이고 두 분의 사진조차 본 적이 없었으니(당시는 아직 사진이 등장하기 전이다) 내가 최초로 상상하던 두 분의 모습은 얼토당토 않게 두 분의 묘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버지의 묘비에 쓰인 글자 모양은 이상하게도 떡 벌어진 어깨에 풍채가 당당하고 거무스름한 피부에 까만 고수머리를 지닌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   양심이란 어른이든 아이든 그것에 가난이 가해지면 끔찍한 존재가 되는 법이다.

* 누나가 나를 키웠던 탓에 나는 예민한 아이였다. 사실 누가 키우든 간에 아이들에게는 그들이 살아 가고 있는 작은 세계 안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일 만큼 예민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는 법이다. 그 부당한 일이라는 건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작고, 아이들의 세계도 작으며, 아이들이 탄 흔들거리는 목마는 그저 그 높이가 우람한 골격을 지닌 아일랜드 사냥개의 키 정도로, 자로 재 보면 그저 몇 뼘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유아기 시절부터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맞서 싸우는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었다. 말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누나가 변덕스럽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누나가 나를 손수 키웠다고 해서 그게 나를 잡아당기고, 밀치고, 내던지며 키울 권리까지 부여한 건 아니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갖가지 벌들과 망신주기, 밥 굶기기와 잠 못 자게 하기, 그리고 나를 참회시키기 위해 누나가 했던 기타 모든 행동들을 통해 나는 이런 확신을 깊이 품고 있었다. 내가 평소에 소심하고 예민한 아이였던 것은 혼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오로지 늘 이런 확신만을 친구 삼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거야. 어떻게 해서 생겨났든 간에 거짓말은 절대로 생겨나서는 안되는 거야. 거짓말은 그 왕초 격인 악마란 놈으로부터 와서 돌고 돌아 다시 같은 놈에게로 돌아 간단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마. 그런 일은 비천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네. 똑바른 길을 통해서 비범한 신분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넌 결코 굽은 길을 통해서도 거기 도달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거짓말은 하지 마. 그리고 잘 살다 행복하게 죽으라고."

* 그 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행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번째 연결고리가 어떤 기억 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라.

*  우리가 평생을 살아갈 때 가장 좋지 않은 우리의 결점이나 비열함은 대체로 우리가 가장 경멸하는 자들 때문에 드러나는 것이다.

* 네게 진정한 사랑이 뭔지 말 해 주마. 그건 맹목적인 헌신이고, 의심하지 않는 겸손이고, 완전한 존중이고, 너 자신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뜻을 거스르는 신뢰고 믿음이다. 네 모든 마음과 영혼을 포기하고, 그걸 너를 매혹하는 사람에게 다 주는거지.

* 좋은 기회는 어떤 사람에게 거저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그가 반드시 찾으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 "핍씨" 웨믹이 말했다. "괜찮다면 핍씨와 함께 첼시구역까지 쭉 올라가면서 런던의 다양한 다리 이름들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하나씩 훑어 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자, 한번 해 볼까요. 우선 하나, 런던교가 있습니다. 둘, 서더크 교, 셋, 블랙프라이어스 교, 넷, 워털루 교. 다섯, 웨스트 민스터 교. 여섯, 복스홀 교." "핍씨도 알다시피 선택할 다리가 총 여섯개가 있군요." "다리를 고르세요, 핍씨. 그리고 그 다리로  걸어가서 돈을 다리 중앙부의 아치 너머 템스 강으로 내 던지세요. 그러면 돈의 종말을 알게 될 겁니다. 돈으로 친구에게 도움을 주면 친구관계의 종말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더 기분 나쁘고 유익하지 못한 종말이지요."

* "핵심을 찔렀습니다. 생각의 모자를 쓰고 심사숙고해 보겠습니다."

* <너는 일주일이면 네 생각속에서 나를 지울거야.> <내 생각속에서 너를 지운다고? 너는 내 존재의 일부야. 나 자신의 일부야. 내가 상스럽고 비천한 꼬마의 모습으로 이곳에 처음 왔던 날 이후로, 너는 내가 읽어 왔던 모든 책의 한 줄 한 줄 속에 있었어. 넌 그때 이후로 내가 보아왔던 모든 풍경들 속에 있었어. 넌 그동안 내 마음이 알게 된 모든 우아한 공상이 구체화된 존재였어. 런던에서 가장 튼튼한 건물들을 짓는데 쓰인 돌덩이들조차도, 런던이든 어디든 모든 곳에서 내게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네 존재와 영향력보다는 덜 구체화된 존재들일거야. 네 손으로 옮기기 덜 힘든 것일테고, 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는 존재의 일부로 내 안에 있는 얼마 안되는 선한 면의 일부로, 또 악한 면의 일부로 남아 있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이별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턴 오직 너를 내 선한 면하고만 결부시킬게. 그리고 앞으로는 충직하게 늘 그런 면만 붙들고 있을께. 지금은 비록 너무나 쓰라린 고통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너는 그동안 분명히 내게 해보다는 이로운 도움을 더 많이 주어 왔어.>

* 마무리 - <나와 작별하는게 기쁘다고 에스텔라? 내겐 작별이 고통스런 일이야. 내겐 우리의 마지막 작별에 대한 기억이 늘 슬프고 고통스런 일이었어.> <하지만 넌 그때 내게 말했어.> 에스텔라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하느님께서 널 축복해 주시고 널 용서해 주시길 바랄게!>라고.  그때 내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었으니 지금도 기꺼이 내게 그렇게 말해 주겠지. 다른 모든 가르침보다 훨씬 더 강렬한 고통을 내가 겪고 난 지금 말이야. 그리고 그 고통이 옛날 네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하라는 가르침을 내게 준 지금 말이야. 나는 휘어지고 부러졌어. 하지만 내 모습이 더 훌륭한 모습으로 바뀌었기를 바라. 부디 옛날처럼 사려 깊고 착한 모습으로 나를 대해 줘. 그리고 우리는 친구라고 말해 줘.> <우리는 친구야.>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내가 일어나서 그녀에게 몸을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따로 떨어져 살아도 계속 친구일거고.> 에스텔라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폐허에서 나왔다. 오래전 그 옛날 내가 처음 대장간을 떠나던 날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며 걷혔던 것처럼, 지금도 저녁 안개가 피어오르며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걷혀 가는 그 안개가 내게 보여 준 교교한 달빛이 광활하게 펼쳐지며 뻗어나가는 모습속에서, 나는 그녀와의 그 어떤 이별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 해설 -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1860년 12월부터 1861년 8월까지 주간지 <연중일지>에 연재되다가 총 세권으로 완간된 작품이다.   작품은 전체 세권의 구성에 알맞게 내용 전개 과정 역시 3단계로 구성된다. 

   1권은 핍이 매그위치와 만나는 습지대 사건으로 인해 죄의식에 시달리게 되고, 미스 해비셤의 저택을 방문하게 되고, 에스텔라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처지와 신분에 대한 실체적 인식을 갖고 사회현실을 자각해 나가는 과정이 주가 된다.                                                           

   2권에서는 그는 미지의 은인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 런던으로 가서 신사교육을 받게 되고, 에스텔라의 짝으로 결정되었다는 오판에 사로잡혀 속물신사로 성장해 나간다.      

3권에서는 유배형을 받고 떠났던 매그위치의 등장으로 그동안 꿈꾸어 왔던 모든 환상과 희망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밝혀지게 되면서 철저히 좌절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진정한 신사로 거듭나며 에스텔라와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는 결말을 맺는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신사다움>이란 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 인간적 신의를 지키고 남들을 배반하지 않는 고귀한 품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