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더스 헉슬리 - 1894년 7월 26일 영국 남부, 서리주 고달밍에서 3째 아들로 출생. 이튼 스쿨, 옥스포드 영문학 전공. 이튼스쿨에서 교사 생활. 1932년 38세때 장편 '멋진 신세계' 간행. 1947년에 '서문'을 첨가해 15년 뒤에 재출간 함. 1963년 11월 22일 할리우드 교외에서 지병인 암으로 사망.
* 책 머리 - <유토피아는 일찍이 인간이 믿었던 것보다 훨씬 더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기우에 불과했던 문제를 현실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유토피아의 실현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유토피아의 실현은 가능하다. 삶은 유토피아를 향해 전진한다. 아마도 새로운 한 시대가, 지성인들과 교양 있는 계층이 유토피아를 회피하고 또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무척 자유로운 비유토피아적인 사회로 되돌아 갈 길을 모색하는 시대가 시작될지 모른다.>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 서문 - 모든 도덕주의자들이 견해를 같이 하듯이 만성적인 자책감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혹시 무슨 나쁜 행위를 저질렀다면, 그 잘못을 뉘우치고, 능력껏 그 잘못을 시정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도록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되새겨서는 안된다, 깨끗해 지기 위해서 오물 속에서 뒹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멋진 신세계'의 주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과학의 발달이 아니라, 과학의 발달이 인간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 제1장 - 34층 밖에 안되는 낮은 회색 빌딩이 음산한 모습으로 서 있다. 빌딩의 정문에는 <런던 중앙 인공 부화 및 조절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고, 전 세계 국가에서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공동사회, 동일성, 안정>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 "여기가 수태실입니다." 인공부화 및 조절국 국장이 문을 열면서 말했다. 국장이 방에 들어서자, 3백명의 수정원들이 각자의 기구들 위에 몸을 구부리고 혼자서 콧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면서 조용히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 <이것은 이번 주일의 난자들입니다.이 난자들은 혈액과 같은 온도입니다. 그러나 남자의 생식세포는 37도가 아닌 35도에서 보존되어야 합니다. 혈액의 온도에서는 생식력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 말은 6세에 성숙한다. 그러나 13세된 인간은 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20세가 되어야 신체적으로 완전해 진다. 그렇지만 신체적 발달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인간의 지성이 크게 발달하는 것이다.
* 서평 - 20세기 초반부터 등장한 새로운 '이상 국가'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표현하면서 앞 세대의 유토피아 소설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년>과 같은 작품들이 이러한 반유토피아 소설의 범주에 든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서구 산업사회가 근본적인 변화 없이 현재 추세대로 계속되었을 경우, 인류가 맞이하게 될 섬뜩한 장래를 묘사"하고 있다면, 오웰은 <1984년>에서 "모든 인간이 구성분자일 뿐 개성을 잃어버리는 관료주의 사회의 참담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몇가지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 반유토피아 소설에는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의문이 있다.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인간은 과연 그러한 파괴에 대항할 힘이 있는가>하는 점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도구로 생물학적인 '도태와 약품'이, 1984년에서는 사상적인 조종과 무제한의 테러행위가 사용된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거의 완전하다. 반유토피아 소설들은 이러한 경우 인간이 대처해야 할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주 포기하거나 아주 만족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도 아닌 중도파의 경우는 사실상 존재할 수가 없다. 포기하고 순응하거나, 만족하고 과감해지지 않으면 그 세계에서 매장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과학의 힘으로 창조한 미래의 인류사회를 그려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일종의 '유토피아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불행의 원인인 모든 고통, 부도덕, 빈곤, 질병, 범죄, 불안등을 과학의 힘으로 제거해 버린, 만족과 쾌감뿐인 미래의 낙원사회를 그리고 있다. 거기서는 모든 아기가 인공수정을 통해 공장에서 생산되고 일정기간을 시험관 속에서 자라면서 평생 그에게 배정된 사회등급에 적응하게끔 과학적으로 훈련된다. 이 기간동안 '만족'은 거의 천성과 다름없이 습성으로 형성되어 지배자가 무엇을 요구하든 개인은 이에 만족을 느끼며 복종한다. 따라서 각 개인은 제 멋대로 사랑을 하거나 문학, 예술, 종교 등 과거의 문화유산에 미련을 갖지만 않는다면 <이 멋진 신세계>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죽음마저 즐겁게 맞이하게 된다. 유토피아가 틀림없는 이같은 세계가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시니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 위험한 관계 (1) | 2023.11.25 |
---|---|
앙드레 지드, 좁은문 (3) | 2023.11.22 |
알렉상드르 뒤마, 몽테크리스토백작 (1) | 2023.11.22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데니소비치-수용소의 하루 (1) | 2023.11.15 |
주경철, 모험과 교류의 문명사 (2) | 2023.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