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클로 - 라클로는 1741년 10월 18일 프랑스 북부 아미앵에서 태어났다. 에스파냐 소귀족 출신으로 18살에 포병학교에 입학, 20세에 소위로 임관. 1769년부터 1775년까지 7년 가까이 프랑스 남부 그르노블에서 머물렀고, 이 지역 사교계에 진출했다. <위험한 관계>의 소재 대부분은 그르노블에서 얻은 것이었다. 1781년 9월에 6개월 휴가를 신청해 허가를 얻는데, 이때 이미 <위험한 관계>는 거의 완성이 되었다. 이 작품은 나오자마자 한 달사이에 2천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 편집인의 머리말 - <무릇 작품의 가치는 그 효용이나 흥미로 이루어지는데, 이 두 가지 모두로 이루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작품이 성공했다고 그 작품의 가치가 반드시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작품의 성공은 흔히 짜임새보다는 주제 선택, 전개 방식보다는 전체적인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처럼 사교계 전체의 편지를 담고 있고 관심사가 다양하기 때문에 독자의 흥미가 분산되어 그만큼 재미가 줄게 마련이다. 게다가 여기에 드러난 감정들 거의가 허울만 좋거나 거짓된 것이어서 호기심에서 비롯된 흥미 밖에 끌지 못한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흥미는 참된 감정에서 비롯된 흥미에 비해 뒤떨어지고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끌지 못한다. 그리고 작품이 독자가 만족시키려는 하나뿐인 욕망과 대림하는 것이니만큼, 호기심에서 비롯된 흥미는 작품에서 발견되는 결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이 작품의 효용에 대해서는 아직 이의를 제기 할 사람이 많겠지만, 나로서는 이것을 증명하는 게 한결 쉬워 보인다. 적어도 나는 행실이 옳바른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악인들의 수법을 폭로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도덕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중략) 아울러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에 대한 증거와 실례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방탕한 남자와 교제하는 여자는 결국 그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딸의 자유분방한 행실을 지켜보기만 하는 어머니는 경솔한 어머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녀 가릴것 없이 젊은이들은, 행실이 나쁜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내보이는 호의가 자신들의 행복이나 정조를 치명적이고 위험한 함정으로 몰고 갈 수 있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
* 제1부, 첫 번째 편지 - 세실 볼랑주가 성 우르실라 수녀원 소피 카르네에게. 어때? 내가 약속을 잘 지킨다는 걸 이젠 알겠지? 모자와 꽃 장식을 매만지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앞으로도 널 위해 내줄 시간을 비워둘께. 하지만 오늘 하루만에 지난 4년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본 것 보다 더 많은 장신구를 보았단다. 나는 수녀원에 찾아가게 되면 탕빌(같은 수녀원의 학생)을 면회할 거야. 사치스럽고 오만한 애니까 속이 쓰리겠지? 옛날에 자기가 멋지게 차려 입고 나타날 때마다 우리가 속상하리라 생각했겠지만, 이번에 그때와 비교가 안되게 갚아줄거야. 엄마는 무슨 일이든 모두 나와 상의하셔. 더 이상 학생 취급하지 않는거지. 내 시중을 드는 하녀도 따로 있어. 나 혼자 쓰는 침실과 작은 방도 있고, 난 아주 예쁜 책상에 앉아 네게 편지를 쓰고 있단다.
* <설마 정숙한 여인을 상대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정말 정숙한 여인들 말이에요. 그런 여자들은 쾌락을 즐기면서도 절제하기 때문에, 어정쩡한 쾌락만 줄 뿐이죠.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 맡기는 법을 알지 못하는 거죠. 육체의 쾌락이 넘쳐나면서 정화되는 그런 관능의 희열을, 사랑이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단 뜻이에요.>
* 하느님의 사랑은 이길 수 있어도, 악마의 공포를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 여인을 연인으로 삼아 품에 안고 있으면 그녀의 두근거리는 가슴이 느껴지겠지만, 그건 두려움 때문에 뛰는 가슴이지 사랑 때문이 아니에요.
* 여자란 일단 권력을 손에 넣게 되면 마음대로 휘두르지 않고는 못 견디나 봅니다.
* 여자들은 자기 몸을 허락하고 싶어 안달이 나도, 뭔가 구실이 필요한 법이랍니다. 그럴때 힘이 모자라서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는게 가장 편리한 방법이죠. 고백하건데 사실 나도 격렬하지만 아주 잘 짜인 공격, 그래서 빠르지만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공격이 가장 마음에 든답니다. 본디 여자들이 이용해야 할 실수를 여자들 손으로 꾸며야 하는 성가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격이지요. 여자들이 허락한 것 조차 폭력으로 강요 당한 듯 보이게 해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두 가지 정념을 교묘하게 만족시켜 준답니다. 스스로를 방어했다는 영예로움과 패배했다는 기쁨. 이 두가지 말이에요.
* 오늘 칭찬해 주신 제 행동 역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아신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제 말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고 계시죠?) 칭송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부인입니다. 당신이 칭송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저 제가 숭배하는 신의 나약한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약한 저는 마음의 비밀을 털어 놓고 있군요. 당신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말입니다. 저는 부인의 덕망과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면서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순진 그 자체인 당신 앞에 서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부인이 알지 못하도록 감춰야 한다는 죄스러움 때문에 자책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제가 사악한 야심을 품고서 부인을 욕되게 하려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전 제가 불행해 질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게 될 고통은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녀는 제 손을 뿌리치더니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면서 절망적인 투로 "아, 난 불행한 여자예요!" 외치며 와락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그 손 위로 제 눈물이 떨어지게 했습니다. 계산된 행동이었죠.
* 부인!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흐트러진 제 마음을 달래주십시요. 제가 무엇을 기대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요. 더할 나위 없는 행복과 극심한 불행 사이에 서 있는 이 불안함이야말로 참으로 잔인한 고통이로군요. 제가 무엇 때문에 말해버린 걸까요? 왜 강한 마법에 저항하지 못하고 가슴을 열어보인 걸까요? 아무도 모르게 부인을 연모할 때는 적어도 제 사랑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부인께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됐던 그때의 순수한 마음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부인께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뒤, "난~! 정말 불행한 여자예요!"라고 애절하게 한탄하는 소리를 들은 뒤, 행복의 근원이던 것이 절망의 근원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당신의 그 말은 오래도록 제 마음을 울릴 것입니다. 그 어떤 감정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의 감정이 부인을 두렵게 만들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운명일까요? 무엇이 두려운 것이지요? 그것이 둘이서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결코 아닐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부인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부인께서 늘 비난하시는 제 마음이야말로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유일한 마음인거죠.
부인의 마음에는 연민조차 없습니다. 어떻게 불행에 빠져 고통을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을까요?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유일한 기쁨인 제게, 어떻게 눈길 한번 안 주시나요? 아프다고 하면서 문병을 거절하시다니 상대가 걱정하는 걸 즐기고 계신겁니까? 부인께서는 그저 휴식 시간이었을 그 밤 열 두 시간이 가엾은 제게는 백년보다 긴 고통의 시간이었음을 부인은 알고 계셨을테지요. 도대체 왜 제가 이런 가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부인의 심판을 두여워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뭘 어떻게 했다는거죠? 전 그저 부인의 아름다움과 덕을 보면서 품게 된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것 뿐입니다. 게다가 부인에 대한 존경심으로 늘 그 감정을 눌러 왔고, 순진하게 고백을 해 버린 것도 무언가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부인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부인께서 저에게 그런 신뢰를 허용하셨다고 생각했기에 진정으로 부인을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인께서 그 신뢰를 배반하시다니요. 아니, 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 생각한다는 건 부인에게 잘못이 있음을 가정하는 것이니, 저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얘기한 비난을 거둬들이겠습니다. 펜의 힘을 빌려 쓰기는 했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발 부인이 완전무결하다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 주십시요. 그것만이 제게 남은 유일한 기쁨입니다. 저를 너그럽게 대하심으로써 부인은 진정 그런 분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시요. 저만큼 부인의 구원이 필요한 불행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절 이렇게 반 미치광이로 만든 채 버리지 마십시요. 저의 이성을 앗아가셨으니 이제 부인의 이성을 빌려주십시요. 저를 심판 하신 뒤에는 끝까지 이끌어 주십시요.
저는 부인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사랑을 밀어 붙일 수는 없습니다만 스스로를 잘 다스려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 수는 있겠지요? 저의 행동을 이끌어주시고 제가 해야 할 말을 가르쳐 주셔서 적어도 저로 인해 부인의 마음이 상하게 되는 그런 끔찍한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구원해 주십시요. 저를 용서한다고, 저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말해주십시요. 부인의 관대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십시요. 부인은 제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너그러운 자비심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제게 필요한 만큼은 주십시요. 그마저도 거절하시렵니까? 이만 줄이겠습니다. 부인을 향한 존경심과 제 마음을 받아주십시요.
* 자작님, 어제 제가 저지른 너무나도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이렇게 해명을 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작님께 편지를 쓰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요, 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자작님이 그토록 큰 의미를 두고 인용하신 말을 아마 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작님께선 제 눈물과 말, 두 가지를 다 눈치채고 계셨지요. 그러므로 전 이 모든 걸 해명해야만 합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느 누구도 저로 인해서 부정한 감정을 품게 만든 적이 없었고, 또한 얼굴을 붉히게 하는 말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평온한 삶에 익숙해져 어떤 감정을 감출 줄 모르고, 그 감정과 싸울 줄도 모르는 사람인지라, 자작님의 행동이 너무 놀랍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저를 두렵게 만들었어요. 또 자작님이 경멸하는 부류의 여자들과 저를 똑같이 취급하시는 게 화가 났습니다. 이 모든 이유가 합쳐져서 눈물을 흘리게 했고,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게 만든 것입니다. 자작님께서는 그 말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이신 모양이지만, 만일 제 자신에게 상처가 될 감정을 거부한 채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했더라면 그 말조차 너무 약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자작님의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만일 두려워 하고 있다면 전 자작님의 눈길도 손길도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갔을 겁니다. 그리고 인적 없는 광야의 저 끝에서 당신을 알게 된 불행을 한탄하고 있을 겁니다. 제가 자작님에 대해서 연정을 느낄 일은 결코 없겠지만, 아마도 벗들의 충고에 따라 자작님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나 봅니다. 저는 자작님이 정숙한 여자를 존중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줄곧 당신이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했고, 당신의 그릇된 욕망에 상처 받는 줄도 모른 채 당신을 변호까지 해 드렸어요. 이것이야말로 저의 유일한 과오였습니다. 당신은 저를 모르십니다. 네, 분명 모르세요. 그렇지 않고서야 잘못을 저지른 뒤 자신의 과오를 권리로 삼을 수 있을까요? 제가 들어서는 안될 말을 들려주었다고 해서, 당신이 제게 읽어서는 안 될 편지를 주실 권리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해야 할 말과 해야 할 행동을 가르쳐 달라'고 하시는군요? 네, 가르쳐 드리죠.
<침묵과 망각>, 이것이 바로 제가 드리는, 그리고 당신께서 받아들이셔야 할 충고입니다. 어렵지 않게 따르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저의 너그러운 마음과 더 나아가서는 저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얻을 권리도 생길 겁니다. 아닙니다. 저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부탁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평온을 어지럽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신뢰도 표시할 수 없습니다. 자작님은 제가 자작님을 두려워하고 증오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우정의 말로 막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작님이 전부 부숴버렸습니다. 제가 바란 건 이런게 아닙니다. 전 그저 자작님을 가장 존경하는 분의 조카로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래놓고 아무런 대가도 치르려 하지 않습니다. 자작님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작님의 감정은 저를 상처 입혔고, 그 고백은 저를 모욕했습니다.
* 인간의 본성이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불완전한 것이지요. 선한 사람에게도 약점이 있듯이, 흉악한 사람에게도 미덕은 있습니다.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은 그러한 진리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선한 자들이 자만에 빠지지 않고, 악한 자들도 절망에서 구해 낼 수 있으니까요. 아마 부인은 내가 관용을 가져야 한다고 입으로만 설교하고, 실제로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악한자와 선한자를 똑같이 취급한다면 관용이란 것은 결국 위험한 약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 인간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보고서 사람의 생각을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명예를 잃어버리면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각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명예를 되찾기도 어렵습니다. 부인, 특히 염두에 둘 것은, 사람들의 평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만으로도 명예를 잃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혹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존경이라는 귀중한 재산을 누릴 권리가 있는데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력한 제어장치를 벗어난 사람은 악을 행하게 될 위험이 많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부탁입니다…. 내가 알려준 이유들로도 결심이 서지 않는다면 나의 우정을 봐서라도 그렇게 하세요. 내가 이렇게까지 거듭 이야기 하고 내 생각을 내세우는 것도 모두 우리의 우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정을 내세운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군요. 나도 이런 간섭이 쓸모 없는 걱정에서 나온 것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무관심한 것보다는 우정에서 나온 나의 염려 때문에 원망을 듣는 편이 더 나을 것 같군요.
* 당신의 진짜 실책은 바로 순간적인 기분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된 이상 그 실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할 수 없을거예요. 혹 당신은 그 부인이 당신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증명하고 싶었던 건가요? 그런건 그저 감정상 느껴질 수 있는 성실함의 문제일 뿐, 이론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닐텐데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게 만들려면 이론적으로 따질게 아니라 감동을 주어야 하지요. 그녀의 감정을 이용 할 수 있다면 모를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당신의 아름다운 문장이 그녀를 감동시켜 그녀가 스스로 사랑을 고백할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하나요? 편지를 쓰는 처지와 받는 처지가 다른 것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더욱이 당신의 그 신앙심 깊은 여인처럼 원칙이 확고한 여인이라면 말입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본디 피하려고 애쓰던 것이라면, 그 상태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 "사랑해요!"라고 쓴다는 건 "당신 뜻대로 하세요."라는 말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린애들에게나 통하는 겁니다. 투르벨부인처럼 분별력 있는 여자라면 그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말로 할 때는 당신이 우세할 수 있겠지만, 편지에서는 그녀쪽이 우세할 것 같군요. 아시겠어요? 누군가와 논쟁을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기 싫어지는 법이니까요. 이유야 찾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거고, 그렇게 이유들을 내세울테죠. 그런 다음에는 고집을 부릴 겁니다. 자기가 내세우는 이유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내세운 이유를 취소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당신은 뜻밖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데, 사랑에 있어서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 걸 글로 쓰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신은 모르는 것 같군요. 즉 너무나 그럴 듯하게 쓴다는 것입니다. 물론 진짜 사랑 편지도 당신이 쓴 것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런 식으로 배열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늘어놓겠죠. 그래도 충분하니까요. 당신이 쓴 편지를 다시한번 읽어 보세요. 너무도 질서정연해서 문장 하나하나가 당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잖아요. 물론 당신의 법원장 부인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 애송이였으면 좋겠지만, 아니 그런것보다는 결과는 역시 실패일 겁니다.
사실 이런 과오는 소설책 속에 자주 등장하죠. 작가는 온갖 고생을 다하며 흥분하지만, 독자는 계속 냉담 한 것 말입니다. 분명 작가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다릅니다. 말로 할 때는 사정이 다르답니다. 말을 하려면 신체기관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감정이 담기게 되죠. 눈물이 주는 힘까지 보탤 수 있고, 눈빛은 애정과 욕정이 동시에 표출되죠. 또 말은 글에 비해 일관성이 떨어지지만, 오히려 참된 사랑의 웅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훨씬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는걸요. 더구나 사랑하는 상대가 눈 앞에 있으니 생각을 돌이켜 볼 겨를도 없이 정복당하고 싶어지지 않겠어요?
* 수줍은 성격 때문에 쉽게 걸려들고, 무지 때문에 몸을 맡기는 풋내기들 말고도, 자존심 때문에 걸려들고 허영심 때문에 함정에 빠지는 똑똑한 여자들도 예외에 추가해야 합니다.
* 당신을 알아가면서 저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인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이 당신이 가진 장점들 중에서 가장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천사같은 마음은 제 마음을 뒤흔들고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지금껏 아름다움에 빠져 있던 제가 이제 미덕에 넘어간 겁니다.
* 부인은 제 마음속에 순결하고 진실한 사랑, 결코 변치 않을 존경심, 완전한 복종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제 감정을 신께 바친다 해도 두렵지 않았을 겁니다. 신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인 그대여! 부디 신의 관대함도 따라주시길! 제 모진 고통을 생각해 주시길…
* 자작님, 어째서 감사한 마음을 약하게 하시는 건가요? 왜 제 말을 온전히 들어주시지 않고 망설이는 건가요? 제가 그 가치를 알고 감사드리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으신가요? 자작님께선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계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가능한 걸 요구하고 계십니다. 벗들이 제게 자작님 얘기를 해 준 건 오직 절 위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설사 그들 말이 틀렸다고 해도 그 의도는 옳은 것이에요. 그런 제 친구들이 베픈 호의에 보답하여 그 비밀을 밝히라고 하시다니요. 자작님께 그 얘기를 한게 잘못이라는 걸 통감하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얘기했다면 그저 솔직한 행동이었을텐데, 자작님께는 경솔한 행동이 되고 마는군요. 자작님 요구에 응하라고 하는 것은 저더러 비열한 짓을 하라는 말입니다. 당신의 성실한 마음에 호소합니다. 제가 정말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에게 그런 요구를 하셔야만 했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시면 분명 두번 다시 그런 요구를 하실 수 없을 거예요.
* "나리께서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여자하고 잔다는 건 그 여자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거지 여자한테 내가 원하는 걸 시키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 사실 첫사랑은 언제나 고귀해 보이고, 말하자면 순수해 보이는 법이죠. 하지만 진전이 느린건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섬세하거나 소심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 느껴보는 사랑이 놀라워서, 매순간 다가오는 매력을 느끼기 위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멈춰서기 때문입니다. 그 매력은 처음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강렬한 것이어서 다른 즐거움은 모두 잊게 만들죠. 분명 그렇습니다. 사랑에 빠진 탕아도, 정말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조급하게 쾌락을 즐기지는 않을 겁니다.
* 어느 현자의 말에 따르면, <두려움을 없애려면, 그 이유를 깊이 파고 들면 된다.>고 합니다.
* 기사님, 어머니의 신뢰와 어린 딸의 순진함을 이용했으니 우리 집 출입을 사절한다는 소식을 들어도 별로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그지 없이 진지한 호의를 베풀어드렸는데도 기사님은 오히려 지켜야 할 예의를 잊으셨습니다. 기사님을 문에 들이지 말라고 명을 내리게 되면 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테고, 그리되면 기사님이나 저나 서로 좋을게 없을테니 그보다는 차라리 기사님이 알아서 우리집 출입을 그만 두셨으면 합니다. 또 저로선 그렇게 부탁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다시한번 제 딸을 그런식으로 현혹시키면, 딸을 엄격한 수녀원으로 보내 영원히 기사님의 손이 닿지 못하도록 할 겁니다. 제 마음은 이미 정해졌고, 딸에게도 그대로 일렀습니다. 기사님이 보낸 편지들을 동봉합니다. 제 딸이 보낸 편지들을 돌려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떠올릴 때마다 저는 분노하게 되고 딸은 수치스러워하고 기사님은 후회하게 될 이 사건에 대해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마세요. 그럼 이만.
* 부인께서는 따님의 신뢰를 얻으셔서 비밀을 알아내신 게 아니라 따님을 다그쳐서 알아내신 겁니다. 물론 어머니로서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을 비난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로서 부인께 주어진 권리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가진 의무들 중 가장 신성한 의무는 바로 신뢰를 배반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저 한사람에게만 보여주고 싶었을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건 신뢰를 배반하는 겁니다. 혹시 따님이 부인께 비밀을 고백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땐 직접 말씀드리면 될 테니까 편지는 필요 없을테지요. 반대로 따님이 비밀을 간직하기를 원한다면 부인께서는 아마 제가 나서서 알려드리리라 기대하지 않을 겁니다.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제 감정이 진실하고, 부인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데 대해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으며,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조그마한 의심도 없으셨으면 합니다. 만일 편지를 읽으신 후에도 의심이 완전히 가시지 않으신다면, 그건 전적으로 제가 편지를 제대로 쓰지 못한 탓입니다.
* 남자들이란 다 마찬가지더군요! 사악하게 계획을 세워놓고, 정작 실행에 옮길 때는 약해지고, 그러고는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것 말입니다.
* 당신을 얻는 것보다, 당신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낫다고 제 마음에 되새기고 있습니다.
* 제 글을 잘 읽어주세요. 연필로 쓴 거라 지워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 새겨진 감정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 흔히 여자를 사귀다보면 중간에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대개 사귀고 있는 여자보다 뒤떨어지지 않거나 아니면 더 나은 여자지요. 그럴 때 사람들은 새로운 맛에 이끌려 양다리를 걸치거나 아니면 헤어집니다.
* 저는 공을 들여 편지를 썼습니다. 일부러 조리없이 얘기한 것이지요. 그래야만 제 감정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 테니까요. 가능한 한 억지도 부렸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마땅히 이치에 맞지 않는 면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마지막은 아첨하듯 다정한 말로 마무리했습니다. 오랜 관찰에서 나온 것이지요. 여자들은 한동안 괴로움을 겪고 나면 얼마간 휴식이 필요한 것 같더군요. 여자들에겐 부드러운 말이 가장 감미로운 위안이 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답니다.
* 물론 당신은 수많은 여자를 유혹하고 파멸까지 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고난을 겪고 난관을 극복해야 했나요? 진정 당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한가요? 잘 생긴 외모야 순전히 우연에 따른거고, 사교성도 습관되면 가질 수 있는 법입니다. 재기가 넘치는 건 분명하지만,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남들이 잘 못 알아 듣는 말을 쓰면 채울 수 있는 거죠. 철면피 같은 냉정함은 칭찬할 만하지만, 아마 처음에 너무 쉽게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 자작님, 쓸모없는 재능을 손에 넣으려 하는 사람은 없어요. 당신네 남자들이야 전혀 위험할 게 없는 상태에서 싸우고 있으니 조심을 안해도 되겠죠. 남자들에게 실패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단 뜻일 뿐이니까요. 여자는 패하지 않는게 큰 성공이고 남자는 승리하지 못한게 불행이 되니, 어차피 불공평한 싸움입니다. 남자들도 우리 여자들과 같은 재능이 있다고 쳐도, 여자들은 그 재능을 항상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남자보다 더 뛰어나야 해요. 남자들이 여자를 정복할 때, 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나 몸을 맡길 때와 같은 수완이 필요하다고 가정해 보죠. 하지만 일단 성공을 거두고 나면 여자는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 하나만은 인정할 겁니다. 당신네 남자들은 그저 새로운 맛에 이끌려서 앞뒤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 들죠. 관계를 얼마나 이어갈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서로 밀고 당기는 사랑의 끈을 제멋대로 죄었다 풀었다 하는 것도 남자들입니다. 그나마 마음이 변해서 여자를 버릴 때 소문을 내지 않는 남자라면 전날의 우상을 다음날의 희생양으로 만들지만 않는 양심 있는 사람인걸요. 하지만 불행히도 여자쪽에서 먼저 굴레의 무게를 느끼고 벗어나려고 하면, 아니 그냥 굴레를 들어 올리려고만 해도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받아들이기 싫은 남자를 멀리하려면 몸서리치는 불안을 껴안아야만 해요. 남자가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 하면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을 두려움의 골짜기에 던져버려야 하지요.
* 남자라면 쉽게 끊어버릴 끈도 여자는 신중하고 교묘하게 풀어내야 합니다. 적의 처분에 맡겨진 상태인지라, 상대가 관대한 남자가 아니라면 방법이 없어요. 어떤 남자가 관대하다고 칭송은 해도 관대하지 못하다고 비난하지는 않으니 어찌 남자에게 관대함을 바랄 수 있을까요? 너무나 흔한 일이기에 오히려 평범한 것이 되어버린 이런 진리들을 부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 노예가 되어버린 폭군들> 그들이 나를 따라오게 만들거나 멀리 쫓아버리기도 했어요. 이런 잦은 변화 속에서도 내 명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지요.
* 자작님의 충고와 걱정은 한번 남자에 빠지면 정신이 나가는 여자들, '정에 얽매이는 여자들'에게나 주세요. 그런 여자들이 공상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모든 감각이 머릿속에 들어 앉은 듯해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해 언제나 사랑과 애인을 혼동하고 매번 허황된 환상에 빠지죠. 한 남자와 쾌락을 추구하고 나면 마치 이 세상에서 그 사람만이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 버리면서요. 또 그런 여자들은 미신에 빠져서 오직 하느님께 바쳐야 할 존경과 신앙을 사제에게 바쳐요.
더구나 신중하기보다는 허영심이 강해서 상대가 떠나는 것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여자들이나 염려해 주세요. 한가하면서도 적극적인 여자들, 남자들이 '정에 민감하다'고 하는 여자들은 쉽게 사랑에 빠지는데다 한번 빠져 들면 정신이 없답니다. 즐겁지 않은 사랑일지라도 사랑에 빠져 있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 여자들은 끓어오르는 생각에 무조건 마음을 내맡긴 채, 달콤하지만 위험한 편지를 씁니다. 그러곤 약점을 담은 그 증거들을 정작 원인을 제공한 상대에게 덥석 보여주고 말죠. 오늘의 연인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입니다.
* 내가 처음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아주 어린 소녀 때였어요. 말없이 얌전히 지내야 하는 무렵이었죠. 그런 처지를 이용해서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사색했습니다. 열심히 얘기를 들려줘도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나를 사람들은 둔하고 멍청한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동안 자기들이 감추려고 애쓰는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말이죠. 이런 유익한 호기심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나 자신을 감추는 법도 가르쳐주었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감추어야만 했기에, 나는 마음대로 시선을 움직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렇게해서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듯한 시선을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답니다. 첫 성공에 용기를 얻은 후 같은 방식으로 얼굴 표정 역시 마음대로 조절 할 수 있게 되었죠. 조금 슬플 때도 밝은 표정을, 심지어 즐거운 표정을 짓는 법을 익힌 겁니다. 일부러 고통을 찾아내 기쁜 표정을 짓는 법을 연구할 정도로 열심이었죠. 마찬가지로 예기치 못한 기쁨이 찾아올 때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있도록 정성과 노력을 쏟았어요. 자기 훈련을 하면서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나는 것과 표정의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슬쩍 쳐다봐도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게 되었죠. 물론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만, 틀린 적은 거의 없었답니다.
나는 독서의 도움을 받아 관찰을 통한 연구를 더욱 탄탄하게 다졌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풍속을, 철학서를 읽으면서 우리 사상을 연구했죠. 심지어 가장 엄격한 모럴리스트 글에서도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뭔지를 찾아내려고 애썼는걸요. 그렇게 해서 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그리고 남의 눈에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 제발 대답해 주십시요.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잘못 생각한 겁니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있습니다. 마음이 약해져서 잠시 두려워진 겁니다. 하지만 곧 사랑이 그 두려움을 없애줄 겁니다. 세실, 내 말이 맞지 않나요? 당신을 탓하는 건 옳지 않을 겁니다. 아! 제가 잘못 생각한 거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렇다면 저는 당신에게 애정 어린 사죄를 하겠습니다. 이 순간의 부당함을 영원한 사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어제 자작님은 제가 잠든 사이 열쇠를 이용해서 제 방에 들어오셨어요. 정말 그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답니다. 잠에서 깼을 때는 너무 겁이 났어요. (중략) 하지만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어요. 글쎄 자작님이 저를 안으려고 하시는 거에요. 당연히 저는 피하려고 방어를 했는데, 그분은 너무 능숙했어요. 저는 정말 싫었지만…. 자작님이 키스를 해달라고 하셨어요. 싫다고 할 수가 없었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사람을 부르려고 했지만 잘 안되었고, 자작님 말로는 만일 누가 오게 되면 모든게 다 제 잘못이라고 하시겠다는 거예요. 사실 열쇠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만들기 쉬운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키스를 한번 하고 나서도 물러 서지 않으셨어요. 한번만 더 해달라고 하시면서요. 두 번째 키스는, 그러니까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너무나 혼란스러웠어요. 그러고 나서 더 나쁜 일이 벌어졌어요. 아! 정말 옳지 않은 일이예요. 그리고 결국…. 나머지는 말씀드리지 않을래요. 저는 정말 불행해요.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말이 안되는 건, 그래도 부인께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은, 제가 온 힘을 다해 방어하지 않은 것 같다는 사실이에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발몽 자작님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오히여 반대예요. 그런데 어째서 도중에 잠시 동안은 자작님을 사랑하는 것 같았을까요? 물론 말로는 계속 안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제 행동은 그게 아니었어요. 제 스스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굉장히 당황한 상태였잖아요! 자기 자신을 지킨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정말 습관적으로 몸에 밴 사람들만 가능한 일일 것 같아요. 그리고 자작님은 말을 너무 잘 하셔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어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자작님이 나가실 때엔 어찌된 까닭인지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저녁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들이기까지 했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일이 가장 화가 나요. 아! 하지만 약속드릴께요. 절대 다시는 못 오시게 할 거예요. 자작님이 미처 방에서 나가시기도 전에 약속을 하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내 울기만 했어요.
* 제가 이렇게 걱정하는 건 바로 딸 아이 때문입니다. 파리를 떠나온 뒤 그 애가 언제나 슬퍼하고 우울해 한다는거야 이미 알고 있었고, 예상했던 일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엄하게 대했습니다. 떨어져 있으면서 관심을 다른 데에 돌리면 사랑이 식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진실로 좋아한다기 보다는 아직 어려서 판단을 잘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도 나아지기는 커녕 더더욱 우울해 하는 것 같아요.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며칠 전부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답니다. 어제는 정말 심해서 모두들 걱정할 정도였죠.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저를 대할 때면 늘 조심스럽던 태도가 달라졌답니다. 어제 아침만 해도 그저 어디 아픈 거냐고 물었을 뿐인데 제 품안으로 달려들어 자신이 너무 불행하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겁니다. 펑펑 울더군요.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말로는 다 전해드릴 수 없을 정도랍니다. 저도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딸애가 볼까 봐 간신히 고개를 돌렸는걸요. 신중하게 처신해야 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묻지 않은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제가 캐묻지 않으니 딸아이도 더 이상 말하지 않더군요. 불행한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계속해서 저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딸을 불행하게 만들어야만 할까요? 다정다감한 마음이 쉽게 변치 않는다는 건 인간 영혼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질일텐데. 그 때문에 딸 아이가 저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어야만 하는 걸까요? 어미로서 딸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요?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고, 우리가 가진 의무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그것이 나약함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딸에게 선택을 강요해야만 할까요? 그로 인해 닥치게 될 불행한 결과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자기 딸을 죄악과 불행의 틈바구니로 내모는 건 어쩌면 어미로서 지니는 권위를 남용하는 일이 아닐까요?
스스로 그토록 비난했던 일을 제 자신이 그대로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딸의 상대를 제 마음대로 골라주려고 했지만, 그건 제 경험을 살려 딸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죠. 결코 권리를 행사하려 한 게 아니라 의무를 수행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딸 아이 마음을 헤아리고 다잡아 주지 못한 제가, 그 마음이 언제 변할지도 모르면서 멋대로 휘두르는 것이야말로 의무를 저버리는 게 아닐까요? 저는 딸애가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딸의 정절이 더러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 권위를 더럽히는 게 옳을 겁니다.
생각만으로도 걱정스러운 불행과, 자신이 선택한 남편과 즐겁게 살아 갈 의무 밖에 모른 채 지낼 수 있는 딸의 행복을 비교해 보고 있습니다. 사위 또한 자기 선택을 만족해 하면서 매일같이 기뻐하겠지요. 서로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 되고, 두 사람의 행복이 합쳐져 제 행복을 더해 줄 겁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헛된 이유들 때문에 희생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그런 헛된 이유들을 도대체 왜 떨쳐버리지 못하는 걸까요? 단 하나, 이해타산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 딸이 재물의 노예가 된다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 난 보람이 없지 않을까요?
제르쿠르님이 제 딸에게 과분한 신랑감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가 제 딸을 선택해 준게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가문으로 보면 그다지 빠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적으로도 뒤질게 없지요. 오히려 제 딸을 사랑하고 또 제 딸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더 유리한 입장입니다. 재산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제 딸이 두 사람이 살 만큼 재산을 가지고 있으니 문제될 게 없지 않을까요? 딸애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만족감을 누리지 못하게 할 이유도 없지요. 서로 어울리는 사람을 맺어 주는 것이 아니라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정략결혼은, 두 사람의 취향과 성격을 빼고는 모든 것이 잘 맞는다고 하여도 요즈음 빈번하게 터지는 추문의 온상이 아닌가요? 저는 이 혼담을 연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딸아이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좀더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잠깐동안 괴로움을 겪게 할 용기는 있지만, 혹시라도 평생을 절망에 빠뜨리는 일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장래가 달려있을 때, 특히 한번 묶으면 다시 풀 수 없는 결혼이라는 신성한 매듭으로 장래를 결정해야 할 때, 다른 무엇보다도 신중함이라는 미덕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명하면서도 자애로운 어머니라면 부인께서 말씀하셨듯이 <경험을 살려 딸을 도와야>할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무엇보다도 딸이 좋아하는 것과 딸에게 어울리는 것을 구별해야 하지 않을까요?
* 어쩌면 제가 사랑의 열정에 대해서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열정이 결혼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부부관계를 아름답게 만들고 부부 사이의 의무를 부드럽게 해 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부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애정이 아닙니다. 한 순간의 환상으로 인생이 걸린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선택을 제대로 하려면 비교해보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만 정신이 팔려있으면 도대체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나머지 한 사람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한 사람에게 빠져 있으니 말입니다.
부인께서도 아시겠지만 저는 그런 불행한 병에 걸린 여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중 몇 명은 저에게 속내를 고백하기도 했답니다. 그 말을 들어보면 상대는 언제나 완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꿈같은 완벽함은 여자들의 상상속에서만 존재 할 뿐이지요. 이미 흥분된 머리는 멋있고 덕스러운 모습만을 꿈꾸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멋대로 꾸며내는 겁니다. 비천한 사람이 때로 하느님의 옷을 입기도 하는 거죠. 하지만 일단 상대에게 그런 옷을 입히고 나면, 여자들은 자기가 만들어 놓고서도 그 모습에 현혹되어서 무릎을 꿇고 숭배하게 되는 법입니다.
* 부부가 된 뒤 양쪽이 모두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서로 상대의 마음을 연구하고, 상대를 배려해서 행동을 조심하고,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서 어떤 것을 양보해야 평온하게 살 수 있는지 깨닫게 될 겁니다. 그 정도의 가벼운 희생은 어렵지 않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치르는 것이고 또 미리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니까요. 그런 희생을 통해 두 사람은 머지않아 서로 애정을 주고 받게 될 것입니다. 일단 그런 성향을 받아들이고 나면, 습관에 따라 더욱 강해질테지요.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감미로운 호의, 다정한 신뢰가 생겨 날 것입니다. 서로 존중하는 사이에 이런 호의와 신뢰가 더해진다면 결국 결혼이라는 진정한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물론 사랑의 환상은 더 달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갈 수 없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은가요? 더구나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 닥쳐올 위험을 생각해 보셨나요? 아주 작은 결점도 충격적인 것이 되고 참기 어려워질 겁니다. 앞서 마음을 유혹했던 완벽함과 대조적일테니까요. 두 사람은 서로 상대가 변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 한순간의 착오로 누릴 수 있었던 그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자기는 상대에게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상대가 자신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면 이상하게 여기고 굴욕감을 느낄겁니다. 상처받은 자존심은 감정을 날카롭게 하고, 과오를 저지르게 하고,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마침내 증오를 낳게 합니다. 순간의 쾌락에 대한 대가로 영원한 불행을 받게 되는 것이죠.
* 조금만 잘 생각해보면 슬퍼할 일이 아니라 기뻐할 일이라는 걸 알게 될거야. 좀 창피하고, 그래서 마음이 편치는 않겠지. 마음을 가라앉혀 보렴. 사랑이 주는 수치심은 사랑의 고통과 같은 거란다. 한번만 느끼면 끝이지. 물론 계속 창피한 척 할 수는 있지만, 정말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쾌락은 남는단다. 그리고 그 쾌락이란게 아주 굉장하지. 너도 이미 기대하고 있는 것 같더구나. 이것저것 정신없이 늘어놓은 네 얘기 가운데 분명히 알 수 있었는걸…
* 추신 : 한 가지 잊었구나. 문체에 좀더 신경을 써야겠다. 여전히 어린애처럼 쓰더구나. 왜 그러는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생각나는 그대로 다 말하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절대 말하지 않기 때문이지. 물론 우리 사이에는 감출게 없으니 상관없다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르지 않겠니? 더구나 애인한테라면! 계속 이러면 바보처럼 보일게다. 편지는 자신에게 쓰는게 아니라 상대에게 쓰는 것이니까. 그러니 자신의 생각을 쓰기 보다는 상대가 즐거워할 만한 것을 써야 한단다. 그럼, 정말로 안녕. 네가 좀 더 현명해지기를 기대하면서, 꾸짖는 대신 키스를 보내마.
* '여자란 나이를 먹을수록 까다롭고 엄격해진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40-50대가 되면 얼굴이 처지는게 눈에 보이고, 여전히 미련은 남아 있는데 그동안의 야심과 쾌락을 버려야만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답니다. 그리되면 대부분의 여자가 정숙한 척하면서 까다로와 지죠. 완전히 체념하기 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한번 체념을 하면 그 다음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가장 흔한 부류는 얼굴과 젊음 밖에 가진게 없었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는 여자들입니다. 고작해야 도박을 하거나 교회에 가는게 다죠. 이런 부류의 여자들은 언제나 따분하고 신경질적이며 때로는 잔소리가 심하지만 심술궂지는 않아요. 이런 여자들은 엄격하다 아니다 말 할 것도 없답니다. 생각이 없고 자기 삶도 없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남의 말을 그대로 따라할 뿐이니까요. 그 자신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거죠.
다른 부류는 그 수가 훨씬 적지만 매우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이성적 사고를 키우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안답니다. 이전에 얼굴을 꾸미느라 공들여 치장했다면 이제는 정신을 치장합니다. 대개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고, 사고는 굳건하면서도 명랑하고 우아하죠. 남자를 유혹하는 매력 대신 선의로 마음을 끌고, 나이가 들수록 매력이 더해가는 쾌활함으로 마음을 끌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도 젊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작님 말처럼 '까다롭고 엄격해 지기는'커녕 몸에 밴 너그러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오랜 성찰, 특히 지금도 세간의 관심을 두게끔 하는 젊은 날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대하기 쉽습니다.
* 오! 나의 젊은 벗이여! 이런 말을 하는게 괴롭지만, 부인은 사랑 받을 자격이 너무 많은 여자라 오히려 사랑으로 행복을 얻기 어려울 겁니다. 진정으로 섬세하고 민감한 여자들 가운데 그토록 많은 행복을 가져 올 것처럼 보이던 사랑 때문에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 남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여자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나 하는 걸까요?
물론 행실이 올바르고 애정이 변하지 않는 남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남자조차 여자와 한 마음인 사람은 얼마나 드문지요. 남자의 사랑이 여자가 느끼는 사랑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남자도 여자와 똑같이 매혹되고, 어쩌면 여자보다 더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근심어린 애정과 세심한 배려로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정하고 한결같은 정성을 쏟는다는 걸 남자는 절대 모릅니다. 남자는 사랑받는 행복을 즐기고, 여자는 주는 사랑을 즐기지요. 사람들은 이 차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차이이고 남녀 각자의 행동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답니다.
남자의 쾌락은 욕망을 채우는데 있고, 여자의 쾌락은 그 욕망을 일으키는데 있어요.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 남자에게 성공을 위한 한가지 수단이라면, 여자에게는 그 자체가 성공입니다. 흔히 여자들이 교태스럽다고비난을 받는 것도 실은 이러한 표현의 차이에서 오는 남녀의 이해의 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느낌의 차이는 실제로 존재해서 남녀가 다르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사람만이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독점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에게 독점욕은 그저 더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고작해야 쾌락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예요. 다른 대상이 나타나게 되면 사라지진 않더라도 약해집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독점욕은 아주 깊은 감정이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욕망만 놔 두고 다른 욕망들은 모두 없애버리니까요.
더구나 본능보다 훨씬 강하고 본능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있는 욕망이기 때문에, 쾌락을 일으킬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 오히려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물론 어느정도 예외적인 경우도 있고 실제 몇가지 예를 들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적 진리에 맞설 정도는 아니랍니다. 흔히 남자들에게는 不貞과 외도를 구별된다고 생각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죠. 두 가지가 구별된다는 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지만, 정작 남자들은 이것을 잘 이용한답니다. 여자들의 경우 이런 구별은 같은 여자들도 수치스러워하는 타락한 여자들이나 받아들이는 것이죠. 그런 여자들은 자신의 비천함에 대한 쓰라린 감정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으니까요.
나의 아름다운 벗이여. 사랑에 빠지게 되면 완벽한 행복을 꿈꾸게 되죠. 나는 부인이 꿈꾸고 있는 완벽한 사랑에 다치지 않게 내가 말한 것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인간이란 희망을 버려야만 하는 순간에도 거짓 희망에 집착하게 되고, 그 희망을 잃고 나면 격렬한 정열이 뒤따라 괴로움만 더욱 깊어지죠. 그럴 때 부인의 아픔을 달래주고, 또 조금이라도 줄여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자 하는 역할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치료 할 약이 없는 병에는 식이요법을 권할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점은, 일전에 말했듯이 아픈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 보실 수 있는 분께 맡깁시다. 하느님께서 보시면 한번의 실수 정도는 수많은 덕행으로 속죄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제발, 과격한 결단을 내리지만 마세요. 그건 용기를 내는게 아니라 오히려 절망을 드러내는 겁니다. 부인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버렸다고 했지요. 하지만 이미 먼저 당신의 삶을 함께 소유했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친구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가끔씩 당신의 다정한 어머니를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그 어머니는 언제나 누구보다도 당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쾌락이란게 실제로 남녀를 이어주는 유일한 동기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관계를 형성하기에 충분하지는 않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건가요? 쾌락을 맛보기 전에는 욕망이라는 것이 남녀를 가깝게 해 주지만, 그 다음에는 환멸이 이어져 남녀를 멀어지게 한다는 걸 모르나요? 이건 오직 사랑만이 바꿀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이에요. 하지만 사랑이란게 원한다고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사랑은 언제나 필요하죠. 다행히 한쪽에만 사랑이 있으면 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이상, 상황은 정말 거추장스러워져요. 어려움은 반으로 줄고, 별로 잃을 것도 없게 되니까요. 한쪽은 사랑하는 행복을 누리고, 다른 쪽은 사랑 받는 행복을 누리는 거에요. 물론 사랑 받기만 하는 것은 전자보다 행복이 덜하지만, 그 대신 상대를 속이는 쾌감이 더해지면 서로 균형이 잡혀 모든 게 잘 해결됩니다.
* 그리고 내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당신 나이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생각을 하나 얘기하겠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법과 종교가 정한 한계를 벗어나면서까지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 마무리 - 단 한번 위험한 관계를 맺은 것이 이렇게 큰 불행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 집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아무리 엄청난 불행이라도 모두 피할 수 있었을텐데! 남자가 유혹하는 말을 꺼냈을 때 냉철하게 생각하여 도망갈 수 있었을텐데! 누가 딸에게 말을 걸면 바로 경각심을 가졌을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언제나 일이 벌어진 뒤에 떠오르는 법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진리가, 가장 널리 알려진 진리가, 우리 무분별한 풍속의 소용돌이 속에 묻혀버리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버리고 마나 봅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우리들의 이성은 불행을 경고해 줄 능력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을 위로해 주지도 못한다는 걸 절실하게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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