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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 1883년 2월 18일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출생.(당시 크레타는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였음.)

                                    1902년 19세때 아테네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 

                                     1907년 24세때 '동이 트면'으로 희곡상을 수상, 유명인사가 됨.

                                      1914년 31세. 아토스산을 여행. 여러 수도원을 돌며 40일간 머무름.

                                      1917년 34세. 제1차대전으로 석탄연료가 부족해지자, 기오르고스 조르바라는 일꾼을 고용하여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을 캐려고 시도함.

                                      1943년 60세. 독일 점령기간 곤궁함에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완성

*  첫머리 -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기 직전인데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유리문을 닫았는데도 파도의 포말을 조그만 카페 안으로 날렸다. 카페 안은 발효시킨 샐비어 술과 사람 냄새가 진동했다. 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의 숨결은 김이 되어 유리창에 뽀얗게 서려 있었다.  밤을 거기에서 보낸 뱃사람 대여섯이 갈색 양피 리퍼 재킷 차림으로 앉아 커피나 샐비어 술을 들며 흐끄무레한 창 저쪽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운 물결에 놀란 물고기들은 아예 바다 깊숙히 몸을 숨기고 수면이 잔잔해질 때를 기다릴 즈음이었다. 카페에 북적거리고 있는 어부들은 폭풍이 자고 물고기들이 미끼를 좇아 수면으로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서대가, 놀래기, 홍어가 밤의 여로에서 돌아올 시각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하나가 유리창을 코로 누른 채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겨드랑이에다 다소 납작해진 보따리를 하나 끼고 있었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냉소적이면서도 불길 같이 섬뜩한 그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나는 주의 깊게 그를 뜯어보았다. 움푹 들어간 뺨. 튼튼한 턱, 튀어나온 광대뼈, 잿빛 고수머리에다 눈동자가 밝고 예리했다.  

*  <알렉시스 조르바…. 내가 꺽다리인데다 대가리가 납작 케이크처럼 생겨 먹어  '빵집 가래 삽'이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지요. 한때 볶은 호박씨를 파고 다녔다고 해서  '파사 템포'라고 부르는 치들도 있었고…. 또 '흰곰팡이'라는 별호도 있습니다. 이렇게 부르는 놈들 말로는, 내가 가는 곳마다 사기를 치기 때문이라나, 개나 물어 가라지. 그 밖에도 별호가 많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합시다.>

*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 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여자, 과일, 이상… 이 세상에 기쁨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따사로운 가을날 낯익은 섬의 이름을 외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어서 나는 좋아한다. 그곳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는 곳은 없으리라. 꿈과 현실의 구획은 사라지고 아무리 낡은 배의 마스트에서도 가지가 뻗고 果物이 익는다. 그런 현상이 그리스에서는 필요가 기적의 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는 듯하다.

*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너나 없이 나이 처먹어 분별이 좀 생기고 이빨도 좀 빠져야 합니다. 이빨 하나 없는 늙은이라면 <안돼, 얘들아. 깨물면 못써.>하고 소리치긴 쉽습니다. 그러나 이빨 서른 두개가 말짱할 때는….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가 봐요. 그래요 두목, 사람 잡아 먹는 야수 말이오!

*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 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거라고요.

*  <이야기 하세요, 조르바. 뭐든 이야기 해요!>   매일 밤 조르바는 나를 그리스, 불가리아, 콘스탄티노플 구석구석으로 데려다 준다. 나는 눈을 감고 본다. 그는 난장판이 된 발칸반도를 돌아다니며 늘 경이로 반짝이는 조그만 실눈으로 모든 것을 샅샅이 보고 온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버릇 들게 된 것들, 예사로 보아 넘기는 사실들도 조르바 앞에서는 무서운 수수께끼로 떠오른다.  지나가는 여자를 봐도 그는 말을 멈추고 큰 일이나 난 듯이 말한다. <대체 저 신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는 묻고 또 묻는다. 그는 남자나, 꽃 핀 나무, 냉수 한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  <하지만 조르바, 당신은 아무것도 안 믿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번이나 얘기해야 알아 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요. 나을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조르바 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 뿐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위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먹는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깨달았다. 조르바는 두 개의 바위 사이에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장만했다. 먹고 마시면서 대화는 생기를 더해 갔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  <먹는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 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  <그런 걸 꼭 내게 물어봐야 하나요? 우리가 여기 온 건 그것 때문이 아닌가요? 생각을 실천한다는 것.>   

*  나는 꽤 오랜시간 잠을 청하려고 애쓰며 생각했다. 내 인생은 한갓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걸레를 찾아 내가 배운 것,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깡그리 지우고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 저 위대한 진짜 알파벳을 배울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인가! 내 오관과 육신을 제대로 훈련시켜 인생을 즐기고 이해하게 된다면!  그러자면 달음박질을 배우고, 수영을, 승마를, 배를 젓는 것, 차를 모는 것, 사격을 배워야 했다. 내 정신을 육신으로 채워야 했다. 그렇게 하자면 내 내부에 도사린 두 개의 영원한 적대자를 화해시켜야 했다.                                                 

  침대위에 우두커니 앉은 채 깡그리 낭비하고 만 내 인생을 생각했다. 열린 문을 통해, 나는 별빛으로 조르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밤새처럼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부러웠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조르바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   나는 벌떡 일어나는 조르바를 보았다. 그는 옷을 벗어 자갈밭에다 던지고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희미한 달빛으로 나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그의 커다란 머리를 볼 수 있었다. 이따금 그는 소리를 지르다, 개처럼 짖다, 말처럼 힝힝거리다, 수탉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이 텅 빈 밤에 그의 영혼은 동물과 친화한 것이었다.

*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소리 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 뿐이었다. 지금 한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  <결혼은 몇번 했지요, 조르바?> 내가 물었다. <몇 번 했느냐고요? 정직하게 말하면 한 번…. 한 번이면 되는 거 아니요? 반쯤만 정직하게 말하면 두 번… 비양심적으로 치자면 천 번. 2천 번, 3천 번쯤 될거요. 몇 번했는지 그걸 다 어떻게 계산합니까?> <정직한 결혼 이야기는 맛대가리가 없어요. 후춧가루 안 친 음식 같은거니까. 그럼 무슨 이야기?  성자가 성상에서 당신을 보며 윙크하고 축복을 보내는데 당신은 그걸 키스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우리 마을에서는 '훔친 고기라야 맛이 있다'는 속담이 전해 내려 오지요. 마누라는 훔친 고기가 아니오. 자, 저 훔쳐 먹은 밤참을 무슨 수로 다 기억해 낸다? 수닭이 장부를 가지고 다니며 한답니까?>

*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무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 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 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갔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  <얘 알렉시스야. 내가 너에게 해 줄 덕담이 많다만, 뭐니 뭐니해도 여자를 조심할 일이다. 하느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드시려는 순간 악마가 뱀으로 화신하여 수슛, 그만 갈비뼈를 가로채어 달아나지 않았겠니? 하느님이 쫓아가 뱀을 붙잡았지만 악마인 뱀은 하느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갔어. 하느님 손에 남은 것은 악마의 뿔 뿐이었단다. 하느님 말씀 하시기를, 살림 잘 하는 여자는 숟가락으로 바느질도 하거니 오냐, 내 악마의 뿔로 여자를 만들어 보리라! 그리고 만드셨지! 

  얘, 알렉시스야! 그래서 악마가 우리를 못살게 구는 거란다. 여자의 어디를 만지든, 너는 악마의 뿔을 만지는 셈이란다. 그러니까, 얘야 여자를 조심해라. 여자는 에덴 동산에서 사과를 훔쳐 보디스에 넣고 다녔단다. 여자 가슴이 불룩한 건 그 때문인데 요새는 보란듯이 흔들고 다니는구나. 염병할 것들이 말이다. 어느 쪽도 안된다. 사과를 먹으면 골로 가는 것이야. 먹지 마라. 그래야 제 정신으로 살 수가 있다. 내가 이것 밖에 또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느냐.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거라!>

*  인간의 고뇌는 정교하게 짠 속임수 속에서 그렇게 끝나게 마련인 것이다. 최후의 인간(모든 믿음에서, 모든 환상에서 해방된, 그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어진) 은 자신의 원료가 되어 정신을 산출한 진흙이며, 이 정신이 뿌리내리고 수액을 빨아 올릴 토양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인간이다.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똥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이 되어도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절대의 고독속에서 음악을 침묵으로,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킨다.                                                                                  

  나는 놀랐다. <붓다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 나는 부르짖었다. 이것이 그의 비밀이며 엄청난 의미다. 붓다에겐 스스로를 비운 <순수한> 영혼이 있다. 붓다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 자신이 바로 空이다. <네 자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

*   불경을 베껴 쓴다는 것은 더 이상 문학을 위한 공부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 내부에 도사린 무서운 파괴력과의 생사를 건 싸움이며, 내 가슴을 말리는 위대한 否定과의 결투였다. 이 결투의 결과에 내 영혼의 구원이 걸려 있었다.

*  <아무렴.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  그런데, 내게 아주 겁이 나는 문제가 하나 있어서 두목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딱 한 가지 두려운 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밤이고 낮이고 마음이 편치 못해요. 두목 겁나는 게 무엇인고 하니, 나이 먹는 것이에요. 하늘이 우리를 지키소서! 죽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끽하고 죽고, 촛불이 꺼지고, 뭐 그런것 아닙니까?                  

  그러나 늙는다는 건 창피한 노릇입니다.   나이 먹어간다는 걸 인정한다는 것은 예사로 창피한 노릇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눈치 채지 못하도록 별짓을 다하는 것이지요. 뛰고 춤 출때는 등이 아프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뛰고 춤춥니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세상이 빙글빙글 돕니다만 나는 주저앉지 않아요. 나는 멀쩡한듯이 뛰고 놉니다. 땀이 나서 바닷물에라도 뛰어들고 나면 감기에 걸려 기침이 나옵니다. 콜록콜록. 내가 기침하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없을 겁니다. 당신은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 그러는 줄 아실 겁니다만, 아니에요. 나 혼자 있을 때도 그럽니다. 나는 조르바 앞에서도 창피한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두목?  나는 조르바 앞에서도 창피하다는 겁니다.

*    두목, 내 속에도 악마 같은 게 들어 있어요. 나는 그 악마를 조르바라고 부릅니다. 속에 있는 조르바는 나이 먹는 걸 싫어해요.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고 먹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먹지 않을거예요. 속의 조르바는 사람 잡아 먹는 도깨비예요. 머리털은 칠흙처럼 검고, 이빨은 서른 두개. 귀 뒤에다 빨간 카네이션을 꽂고 다닙니다. 바깥 조르바는, 아이고 가엾어라. 장구통 배에다 흰 머리카락도 좀 있습니다. 시들어 주름살이 생긴데다 이는 빠져 나가고 커다란 귀에는 늙으면 나오는 흰 털이 늘어 영락없이 길쭉한 당나귀 귀가 되어 있지요.                                  

  두목! 이 조르바가 무얼 할 수 있겠어요? 언제까지나 이 두 조르바가 맞붙어 싸워야 합니까? 어느 쪽이 이길까요? 곧 죽으면, 곧 죽어도 상관 없겠습니다만, 만사형통이죠. 그러나 앞으로도 줄기차게 더 살아야 한다면, 망조가 든 거죠. 두목, 쫄딱 망하는 겁니다. 창피해서 못 견딜 날이 곧 올겁니다. 나는 자유를 잃을 것이며 며느리나 딸 아이는 아이를 보라고 명령 할 겁니다.

*   두목, 당신은 젊지만 역시 같은 수모를 겪어야 할 겁니다. 조심하시오. 내 말 잘 듣고 그대로 해요. 구원은 이 길 뿐입니다. 산으로 기어들어가 석탄이든, 구리든, 철이든, 야연광이든 캐내어 돈을 좀 벌고 친척은 우리를 존경하게 만들고, 친구들은 우리 구두를 핥고 모자를 벗어 인사하게 만드는 겁니다. 두목, 성공하지 못하면 보따리 싸들고 이리나 곰이나 아무거나 만나 잡아먹히는 편이 나을 겁니다. 차라리 짐승에게 좋은 일이나 하는 셈이죠. 하느님이 그런 짐승을 이 땅에 내려 보낸 건, 우리 같은 놈들을 잡아 먹어주어 타락을 막기 위해서 일 겁니다.

*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 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 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날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  <조르바에게 복 있을진저.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  계절의 어김없는 리듬. 무상한 생명의 윤회. 태양 아래서 차례로 변하는 지구의 네 가지 얼굴. 生者必滅. 이 모든 사실이 다시한번 내 가슴을 조여왔다. 해오라기의 울음 소리와 함께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경고였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 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   <그래요, 당신은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 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의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 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판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 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꼴이 된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겁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    <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남자들 앞에서 운다면 말이죠. 남자들끼리는 통하는 기분이 있지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러나 여자 앞에서의 남자는 늘 자기 용맹을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 남자가 여자 앞에서 울음을 터뜨려 버리면, 이 가엾은 것들은 어쩝니까? 끝나는 거지요.>

*  <….한 줌의 흙이로구나. 배고파 할 줄도 알고, 웃기도 하고, 키스도 하는 한 줌의 흙. 한덩어리 흙이면서도 사람을 울리던 것, 지금은…. 우리를 이 땅에 데려다 놓은 악마는 어느 놈이고, 이 땅에서 데려가는 악마는 또 어느 놈인고?>

*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 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 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 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조르바, 내 말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은 자기 삶을 사는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 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글쎄 무슨 싸움일까요?....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지요.>

*  <알렉시스야, 내 너에게 비밀을 하나 일러 주마. 지금은 너무 어려 무슨 뜻인지 모를테지만 자라면 알게 될 것이야. 잘 들어둬라. 얘야, 천당의 일곱 품계도 이 땅의 일곱 품계도 하느님을 품기엔 넉넉하지 않아. 그러나 사람의 가슴은 하느님을 품기에 넉넉하지. 그러니 알렉시스야 조심하거라. 내 너를 축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 쓰느니라!>

*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거요.>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 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저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카밀레 맛이지. 멀건 카밀레 차 말이요. 럼주 같은 맛이 아니요.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